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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21 19:14 수정 : 2011.10.21 19:14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문제의 중요성을 부인한 행위 아닌가

지난 19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작위가 헌법 위반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외교통상부가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한-일 협정에 근거한 외교적 협의를 요청한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상회담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 제기의 중요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로도 여겨질 수 있다.

물론 한-일 간에는 현안도 많고, 역사문제를 이유로 모든 회담이 대결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 ‘대립’되는 쟁점들을 피하기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한-일 통화스와프 확대나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당면한 경제협력을 주된 의제로 하면서도 동시에 역사문제의 현안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외교의 모습일 것이다.

1965년의 한-일 협정은 ‘경제 논리’와 ‘냉전 논리’에 의해 ‘역사 논리’가 배제된 정치적 타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 때문에 과거사 문제가 아직도 한-일 관계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도를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역사문제임과 동시에 인권침해 사례로 한국민의 관심도 높다. 방치한다고 쉽게 사라질 문제가 아니며 양국 정부가 정치적·외교적 지혜를 모아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한-일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킬 토대라는 전향적인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고, 모두발언 등을 통해서 “한-일 양국 간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안도 있다”며 “이런 문제는 어느 때보다 노다 총리가 성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해주기를 기대한다”는 간접적인 주문에 그쳤다. 이에 대해 노다 총리는 “가끔 양국 관계는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대국적 견지에서 양국 관계를 진전시킨다는 마음을 정상들이 갖고 있으면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다”고 답했다. “대국적 견지”에 입각한 “극복”이 정치적 대응의 여운을 남긴 것인지, 아니면 그냥 넘어가자는 것인지 애매한 화법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간접 제기는 노다 총리 취임 후 최초의 양자회담을 위한 외국 방문이라는 점을 고려한 외교적 배려이자 교섭 기술일 수도 있다. 공식 석상에서 몰아세우는 것이 일본 정부의 행동을 오히려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 사실 이번 노다 총리의 방한이 급거 설정된 배경에는 한-일 통화스와프 확대에 대한 한국 쪽의 기대도 있었지만, 갓 출범한 노다 정권으로서도 필요한 조처였다.

일본에서 신임 총리의 최초 공식 방문국은 외교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며 전통적으로 미국이 많았다. 중국을 선택한 아베 전 총리가 예외지만 중-일 관계의 획기적 개선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계산한 결단이었다. 노다 총리의 경우 기대했던 방미 초청이 여의치 않고, 방중도 준비 관계로 12월 이후로 미루어지면서, 셔틀외교의 순서를 어기는 예외를 무릅쓰면서까지 방한이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역사문제를 표면화시키지 않으면서 한-일 협력을 과시한 정상회담으로 ‘노다 외교’의 첫걸음이 일본에서 일정한 평가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일본 언론 보도로는 한국 쪽 실무자가 준비한 발언 요령에는 위안부 문제의 언급이 있었지만, 이 대통령의 판단으로 거론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제 논리’로 또다시 ‘역사 논리’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조용한 외교’ ‘실용 외교’를 통한 구체적인 성과를 얻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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