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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9 19:13 수정 : 2011.12.09 19:13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가

이젠 닭을 기르고 장아찌를 담그는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이
미국인들의 통찰력을 대변한다

미국 금융시장의 혼란이 지속되고 시위대가 금융가를 메우는 요즘, 미국인들의 생활양식 선택도 확실히 진화하고 있다. 한때 세계인들이 쾌활한 10대로 여겼던, 로큰롤과 할리우드 영화를 수출하던 미국인들이 지금은 움츠러들거나 내면을 응시하고 있다. 레저활동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검소함과 임시변통이 흥청망청한 소비주의를 대체한다.

물론 이런 변화는 취약한 경제상황 때문이지만, 심리적 원인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2개의 전쟁(이라크전과 아프간전)과 대여섯개의 선전포고 없는 분쟁에 개입하면서, 미국은 전례없는 문화적 동면기를 지나왔다. 정원 가꾸기, 독서, 뜨개질, 요리 따위가 새롭고도 소박한 유행이 됐다. 젊은이와 히피들이 몰렸던 도회지에선 채소밭이 늘고 유리 진열장엔 렉서스나 프리우스 같은 일본산 자동차가 있던 자리에 토마토가 자란다.

최신 유행을 좇는 다른 젊은이들은 목가적인 판타지를 찾아 전원지역으로 옮겨가고 있다. 젊은 부부, 턱수염을 기른 남자와 고무장화를 신은 여자들은 허드슨강 계곡에 정주해 닭을 키우거나 뉴멕시코주에 환경친화적인 집을 짓는다. 5년 전만 해도 젊은 남자들은 헤지펀드를 다뤘고 여자들은 인테리어 장식품들을 만지작거렸다. 5년 전만 해도 신문의 푸드 섹션은 최신 퓨전요리가 지면을 채웠지만, 지금은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집에서 장아찌를 만드는 대열에 합류한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자들의 이야기를 싣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용카드로 고급 브랜드 제품을 소비하고 호화 잡지에 나온 근사한 삶을 꿈꾸다가 지금은 중산층으로 내려앉은 사람들이 지금은 파머스 마켓, 땔감 난로, 태양광 전지, 가축사료 가게들에 주목한다.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도 과도한 부와 탐닉에서 벗어나 ‘더 단순한 삶’으로 탈출하고픈 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 곧 개봉될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 나오는 홀아비는 시골로 이사해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축을 기른다. 다른 영화들도 부절제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블록버스터 영화 <행오버 2>는 세 남자가 타이의 흥청거리는 밤문화에 탐닉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은 결국 오랫동안 동경해온 결혼과 가정과 치과의사로서의 조용한 삶을 선택한다. 여성들을 겨냥한 영화 <들러리>에선 아둔하지만 엄청난 부자인 신랑 덕분에 모든 것을 누릴 참인 예비신부가 자신을 둘러싼 과도함에서 탈출해 검소한 아파트로 도망친다.

은행 파산, 금융 스캔들, 주택거품 등을 겪은 뒤로 어떤 집단무의식이 요트와 완벽한 골프를 즐기던 삶을 역겨운 것으로 바꿔놓은 것 같다. 반대로, 검약과 단순한 전원생활은 고결한 정화와 구원이 됐다. 1930년대 대공황 때에도 미국 문화에 그런 반전이 있었다. 영화 <분노의 포도>는 부유한 엘리트들의 부패와 대비되는 철저히 현실적인 단순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친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4년 대선 당시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을 그리는 ‘미국의 아침’이란 제목의 텔레비전 선거 광고를 내보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그 아침 이후’다. 미국인들은 더 많은 소비가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지만 빚더미에 올랐을 뿐이다.

지금의 경제위기에서 살아남으려는 이들이 1960년대 급진적이고 공동체주의적인 열정의 최신 버전이 됐다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미국인들은 경제부흥기에 “우리를 믿으라”며 으스대던 이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젠 닭을 기르고 장아찌를 담그는 새로운 ‘아메리칸드림’이, 위기 국면에서 믿을 사람이라곤 자신밖에 없다고 믿는 미국인들의 통찰력을 대변한다.

나오미 울프 미국 사회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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