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2.04 19:19
수정 : 2012.12.0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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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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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지난 50년간 북극지역의 기온은 3~4도 상승하였다. 12만년 된 북극 빙하가 녹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 이후 여름철 북극해 빙하는 40%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이 자연재앙은 북미지역과 서유럽, 동아시아를 잇는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북극도 냉전 시기에는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으로 대치했던 전초선이었다. 미-소가 북극해 연안에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을 늘어놓아, 북극 지역은 지구에서 탄도미사일이 가장 밀집한 지역이 되기도 했다. 그 북극의 빙하가 냉전의 ‘빙하’와 시공간을 같이하며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북극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북서항로가 2008년에 열렸고, 북동항로가 2010년에 개척되었다. 북동항로로 유럽과 한국을 오갈 경우 운항시간은 지금의 24일에서 14일로 짧아진다고 한다. 이 북동항로는 독일 선박이 개척했다. 출발 항구는 울산항이었다. 북극항로가 열리면 아시아에서 북극과 가장 가까운 부산항이 뜰 것이라 한다. 한국에 ‘바다의 실크로드’가 다가온다 하겠다.
한때 한국은 또다른 ‘실크로드’를 꿈꾸었다. ‘철의 실크로드’였다. 반세기 넘게 끊겼던 경의선, 동해선이 이어지면서 얼어붙었던 철마가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그 ‘철의 실크로드’가 부산에서 ‘바다의 실크로드’를 맞이한다면 어떻게 될까? 천지개벽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 한국이 지금 다른 하나의 ‘빙하’에 얼어붙어 있다. 냉전의 ‘빙하’이다. 한때 꿈틀거리던 철마도 다시 얼어붙은 지 오래됐다. ‘빙하’를 녹이려 한 것이 아니라 깨부수려 했다. 무력충돌 일보직전까지도 갔다. 모든 것이 빙점에서 이루어졌다. 분명 세상은 바뀌었는데 수십년 전의 패턴이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모두 내년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한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 거라는 낙관론이 우세한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신뢰는 땅에 떨어졌는데 기대는 하늘을 향한다고 할까, 그 괴리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남북관계가 지금처럼 취약한 적도 없다. 당장 북한이 발사하겠다는 ‘위성’이 가뜩이나 꽁꽁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다시 한파를 몰아오고 있다. 막연한 기대는 있지만 마음은 얼어붙었다 하겠다.
그런 한반도 주변에는 분명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북극이 녹고 신흥대국들이 부흥하고 있다. 글로벌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러시아는 극동개발에, 중국은 동북진흥에 나섰다. 두만강지구 개발에도 탄력이 붙게 된다. 제로섬게임이 아닌 윈윈의 새로운 지경학적 판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모두가 이 변화의 물결을 타려 하고 있다. 이념논쟁으로 에너지를 소모할 여유가 없다. 오죽하면 중국의 새 지도자 시진핑이 새삼스레 덩샤오핑이 말했던 “빈말만 하면 나라가 망한다”(空談誤國)는 말을 꺼냈을까. 이념논쟁 같은 공담으로 나랏일을 망치지 말라는 뜻이다. 중국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 동북아에선 새로운 리더십의 새로운 릴레이가 시작된다. 주변의 지각변동은 한국에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최상의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 그것을 위해 한반도의 ‘빙하’는 깨부술 것이 아니라 녹여야 할 것이다. 깨부수면 함께 매몰될 수 있다. 녹이고 그 위에서 함께 부상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얼어붙은 서로의 마음을, 냉전의 ‘빙하’를 철학으로, 신념으로, 감동으로, 비전으로 녹여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바다의 실크로드를 만들고, 육지의 실크로드를 열어가면서, 함께 사는 경제블록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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