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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2.19 19:18 수정 : 2013.02.19 22:22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한-일 관계를 전망하는 ‘2013 한·일 포럼’에 참석했다. 한·일의 두 언론사가 공동주최한 것으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 의장이 기조연설자로 주목받은 행사다. 아베 신조 총리가 종군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 담화’의 재검토를 추진하고 있는 현 상황을 생각할 때 매우 시의적절한 모임이었다. 주최 쪽의 판단과 고노 전 의장의 용단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지금 한-일 관계는 정치 외교적으로는 ‘최악의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교류가 일상화되었기에 그 심각성이 표면화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역사와 영토를 둘러싼 갈등은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앞으로도 더 확산될 기세다. 문제가 많고 그 해결 전망도 밝지 않다 보니 양국 모두 논의 자체에 소극적인 분위기조차 느껴진다. 작년 후반 이후 한국과 일본을 몇번 왕복하면서 가진 인상이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한-일 관계 전반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기회도 오래간만이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격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일 양국이 어떤 방향으로 관계를 강화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한-일 관계의 강화를 가로막는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일본 정치와 사회가 전체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고노 전 의장은 ‘한·일 포럼’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 벌인 간담회에서, 자신이 보수이면서도 ‘리버럴 정치가’가 된 원점이 ‘전쟁’에 대한 반성에 있다고 술회했다. 40여년 전 국회의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해외방문을 한 것이 선배 의원의 권유로 사이판에서 일본군 유해를 찾는 활동이었다고 한다. 패전 때는 나이가 어렸던 고노가 전쟁의 참혹함과 무의미함을 직접 느낀 계기였던 것 같다. 이런 기반이 있기에 이번 ‘한·일 포럼’에서도 “한·일 양국의 신뢰 구축은 일본의 확실한 반성이 전제”라고 천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세대가 일본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고 서서히 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노 전 의장의 서울 발언도 일본 언론에서는 작게 취급되었다. 아베 총리는 ‘전후세대’에 속한다. 그들 세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보수적인 부분은 전쟁에 대한 반성에 입각한 ‘전후 일본’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아베 총리가 이전에 제창한 “전후 레짐의 탈각”과 개헌론이 대표적이다. 그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고노 전 의장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자민당이 압승할 경우 그 이후를 걱정하는 것 같았다.

일본의 ‘우경화’를 내부에서 견제하고 균형을 취할 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내정치’의 측면에서 우경화는 거침없이 진전될 상황이다. 그 한계는 오히려 ‘밖’에서 찾아질 것 같다. 경제논리와 국제관계다. 영토 문제를 둘러싼 중-일 갈등은 이미 일본 경제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토대로 내셔널리즘의 분출을 중화하고 승화할 수 있는 정책은 충분히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또 하나는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전후 일본’을 부인하는 우경화는 궁극적으로 미국과 부딪치는 논리가 된다. 실제로 미국도 일본의 과도한 우경화를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새 정부도 미-중 관계를 축으로 대외정책의 큰 틀을 다지면서, 그를 기반으로 오히려 대일외교에서 적극적 이니셔티브를 취하기를 기대하고 싶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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