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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29 19:21 수정 : 2013.09.29 19:21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한-일 관계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9월28일 뉴욕에서 새 정부 들어 두 번째로 양국 외무장관이 회동했다. 지난 7월 브루나이에서 처음 대면했을 때에 비하면 회담 형식을 갖춘 만남이었다. 9월21일 도쿄에서 열린 민간 차원의 ‘한-일 교류 마쓰리(축제)’에 기시다 외상이 직접 출석하는 등 일본 쪽이 ‘성의’를 보이는 가운데 실현된 회담이라 약간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것 같다.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외교적 갈등이 한층 증폭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청산이었던 것 같다. 2011년 8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위안부 문제가 대일 외교 현안으로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로서는 이 문제의 해결을 우선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 어렵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일본의 반응은 이전보다 오히려 강경해졌다.

윤병세 외교장관이 위안부 문제의 성의 있는 해결을 촉구하자, 기시다 외상은 오히려 일본 기업에 의한 한국인 강제징용에 배상을 명한 한국 사법부 판결에 문제 제기를 하는 등 역공을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한-일 수뇌회담을 거듭 요청해온 아베 정권의 적극적 자세가 현안에 대한 실질적인 내용을 동반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도 구체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수뇌회담에 응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한-일 외교관계가 정상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렇다고 대일 외교를 손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외교 공백이 장기화하고, 상호 여론이 악화하면서 한-일 간의 인적 교류에도 서서히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일본 내 한국인 동포 사회와 기업들의 고민도 적지 않다. 일본 사회에서 확대되고 있는 반한감정은 일부 세력이 주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방치하면 장기적으로 상당한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대일 강경 자세를 유지하던 중국도 최근 다소 유연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8일 한국에서 열린 한-중-일 문화담당 각료회담에 중국이 출석했다. 다자회담이기는 하지만 시진핑 체제 들어 일본과 각료급 접촉을 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주에는 경제사절단을 일본으로 보내기도 했다.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움직임이다.

대일 외교 체제를 장기적 대국적 관점에서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과거사 청산에 관해서는 확고한 원칙적 요구를 하고, 그 해결 방법에 대한 전략적 구상을 주도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현안인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로 새로이 제기된 강제징용 보상 문제를 포괄하는 해결의 틀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은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의 사법부가 정면충돌하고 있는 형국이다. 피해자의 실질적 구제를 위해서도 정치적 결단과 외교적 지혜가 필요한 때다.

둘째로, 한-중-일 협력의 틀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2008년부터 시작된 한-중-일 정상회의는 올해 한국이 의장국이다. 중국의 소극적 자세 때문에 올해는 아직 열리지 못하고 있지만, 연말까지 개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세 나라의 협력 틀은 애초부터 한국이 중요한 구실을 했고, 상설사무국도 서울에 설치되었다. 1998년 아세안+3 회의의 일환으로 한-중-일 정상회의가 처음 실현된 것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긴밀한 협력에 의한 것이었다. 한-중-일 다자외교 틀은 한국과 같은 ‘미들파워 외교’에서 중요한 요소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상회의가 어려우면 외무장관회의라도 열어 그 안에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사회·문화 분야의 세 나라 협력과 교류도 전략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생 교류를 축으로 하는 ‘캠퍼스 아시아’ 등의 효과는 대학 교육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들의 인식은 눈에 보이게 변화한다. 거대한 전환기에 있는 동아시아 각국의 미래를 위해 한층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학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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