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03 19:14
수정 : 2013.11.0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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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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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관계는 또다시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냉전 종식 후 늘 봐오던 패턴이다. 어찌 보면 그 패턴의 뿌리는 남북의 정치구조에 있고 남북은 구조적으로 신뢰를 이루기 어렵지 않나 싶기도 하다.
냉전이 종식된 뒤 남북 간의 신뢰라고 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쌓았던 것이 가장 돈독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신뢰는 금방 반목으로 바뀌었다. 남북한의 정치구조에 신뢰의 연속성을 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남북한 정치관계는 정부 수립 때부터 제로섬 관계로 시작됐다. 한국전쟁은 이 제로섬 관계가 불러온 열전이었다. 냉전 시기 남북한의 제로섬 관계는 미-소 냉전의 틀에 갇혀 큰 대결로 비화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하나의 제로섬 게임을 치렀다.
이른바 체제경쟁이다. 그것은 상대를 압도하기 위한 힘겨루기였지 선의의 경쟁이 아니었다. 동서냉전이 종식되면서 대결의 일원구도에 갇혀 있던 남북 관계는 대결과 협력의 이원구도에서 긴장과 완화가 반복되는 새로운 패턴을 시작했다. 이 새로운 패턴은 여전히 제로섬 관계에서 파생한다고 할 수 있다. 긴장과 대결이 심화하면 자연히 제로섬 게임의 룰이 작동한다. 협력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제로섬 게임의 룰이 늘 장애요소로 작용했다.
제로섬 관계에서 양쪽은 서로를 이기려 하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경쟁에서 상대를 이긴다는 개념이 아니라 상대를 자기에게 귀속시킨다는 개념이다. 북한이 말하는 ‘통일성전’이나 한국에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은 모두 자기 방식으로 상대를 굴복시킨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애초 남북이 각각 정부를 수립할 때 한국한테 북한 영토는 수복해야 하는 ‘실지’(失地)이고 북한한테 수도는 평양이 아닌 서울이었던 것이 그 원초적 뿌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양쪽은 상대를 존재하지 말아야 할 정권으로 보고 있다.
이 제로섬 게임의 뿌리가 계속 낡은 싹을 키워가는 상황에서 남북한은 과연 신뢰 구축이 가능한 것일까. 신뢰를 구축하려면 일차적으로 상대가 자기를 소멸하려고 들지 않는다는 믿음부터 심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제로섬 게임에서는 그 믿음을 주기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신뢰를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방식의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과연 믿음이 생겨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이야기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 불사’를 이야기하는데 신뢰가 쌓일 수 있을까? 남북한은 지금도 서로 상대가 자기를 멸망시키려 한다고 믿고 있다. 불신의 뿌리는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남북 대내 정치구조가 남북 대결을 동력으로 하는 구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 관계는 늘 각자의 정치에 활용돼 왔다. 어쩌면 통일보다 각자의 대내 정치가 더 중요하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남북한 신뢰 구축 딜레마는 풀 수 없는 것인가?
신뢰를 이야기할 때 정치적 신뢰라는 말은 자주 쓰지만 경제적 신뢰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경제 자체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약속의 이행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경제는 곧 신뢰일 것이다. 남북한 정치구조 특성상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는 사람이 교체될 때마다 ‘신뢰’는 출렁였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은 이명박 정부 때도 건재했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철수 위기에서 다시 소생했다. 그것은 정치적 신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게 아니다. 개성공단은 경제적 논리에 의해 작동할 수 있는 신뢰가 이미 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남북의 경제교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활발하면 활발할수록 그만큼 신뢰가 더 쌓인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중국 대륙과 대만이 그렇게 하고 있다. ‘선경후정’(先經后政)으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현재 경제에 주력하고 있다. 수십년 동안 변화가 보이지 않던 북한이 눈에 띄게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변화를 갈망하면서 이를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에서 윈윈을 많이 이룰수록 신뢰는 쌓여가고 제로섬 게임은 맥을 잃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 신뢰 구축의 답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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