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17 19:05
수정 : 2013.11.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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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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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통상적 판단 기준을 놓고 볼 때, 북한 정권은 꽤 안정돼 있다. 1990년대 기근과 경제 붕괴가 만들어낸 최악의 상황도 수그러들었다. 미약한 수준이긴 하지만, 북한 경제도 제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 0.8%를 성장한 데 이어, 2012년엔 1.3% 성장률을 기록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군부 개편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손쉽게 권력을 공고히 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서서히 바꾸기 시작한 주역으로 돈의 영향력을 꼽을 수 있다. 벼락부자들이 새로 문을 연 레스토랑들을 들락거리고, 새로운 서비스들을 이용하자 평양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했다. 북한 이주노동자들의 본국 송금도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사법체계 자체를 바꾸고 있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 1명이 탈북을 해도, 남은 가족들이 더는 노동교화소로 쫓겨가지 않는다. 외국에서 돈이 들어오리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법을 어겨도, 뇌물만 내면 형사처벌을 피할 수 있다.
북한은 중국식 ‘시장 레닌주의’를 따르지 않는다. 시장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정부가 경제를 틀어쥐고 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소비시장’은 받아들인 것 같다. 자유무역지대나 개성과 같은 공업단지 등 ‘봉쇄 시장’도 마찬가지다. 이 특별경제지구들을 대대적으로 확장할 계획도 갖고 있다. 여기에 소수 한정된 인원이긴 하지만, 평양과학기술대학 등을 통해 회계, 경영, 기타 시장경제 운용에 필요한 교육도 하고 있다.
달리 말해, 그저 돈이 아니라 자본이 북한에서도 중요해졌다. 하지만 돈과 시장에 견줘, 자본의 영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기업가들은 소수이고, 은행시스템도 한계가 있다. 북한은 국제 금융시스템 바깥에 머물러 있다.
바로 이것이 북한이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잠재적으로 정치불안을 촉발시킬 수 있는 취약한 경제체제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돈의 영향력이 자본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경제체제 전환에 나설 것인가? 단순한 국내 개혁만으로는 이런 문제에 답할 수 없다는 게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의 현 경제정책은 상당 부분 중국·한국·미국과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대 북한의 외교정책은 진동의 폭이 컸다. 남북관계는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개성공단 가동 재개 같은 경제협력으로 이어졌다. 북-중 관계는 우호와 긴장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북-미 관계는 2012년 2·29 합의를 이뤘다가, 다시 적대적 상태로 악화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외교정책의 변동이 평양 집권층 내부의 열띤 논쟁의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새 지도자가 다양한 외교정책을 시험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는 얘기다. 오히려, 젊은 지도자 주변에서 서로 다른 접근법이 경쟁을 벌이고 있을 수도 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북한 엘리트 집단이 경제개혁에 필요한 자본 조달이라는 주요 목표를 이뤄낼 방법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찌됐건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로 인해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 남한과 경제협력은 북한 노동자들을 남한의 영향력에 노출시킨다. 미국과 경제협력 및 국제 금융시스템 편입은 북한의 주요 억지력인 핵 프로그램 타결을 전제로 한다. 중국과 협력은 대중 의존도 심화로 이어질 것이다. 북한이 적대국은 물론이고 동맹국 외교에서도 극단을 오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아무런 부작용 없이 자본을 끌어들인다는, 불가능한 과업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나라도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국제 경제체제에 참여할 수 없다. 미국과 페르시아만 연안의 석유 부국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와 주체사상, 김씨 가문의 ‘초자연적 능력’이 어떤 식으로 뒤섞이면 전면 자본주의화 없이도 자본 획득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최소한 지금으로선, 북한은 장기적 생존을 위해 단기적 불안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붕괴도, 번영도 아직은 먼 얘기다. 북한은 그 중간에 끼어 있다. 조만간 가시적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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