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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2.22 18:46 수정 : 2013.12.23 15:03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치안유지법의 부활로도 불리는 특정비밀보호법이 6일 심야 일본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베 내각은 법안을 강행 처리하였다. 법안 제안부터 성립까지 민주주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소수 야당의 분열과 뒤늦은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아베 내각의 폭주를 저지하기에는 무리였다. 동 시기 한국에서는 철도 민영화 반대를 위한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개되고 있다. 우연의 역사일까? 아베 내각의 등장으로 가속화된 일본 사회의 폭주는 1987년 국철 민영화가 그 시작이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내각은 재정적자 해소를 명목으로 1987년에 국철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철을 제이아르(JR)로 대표되는 여객철도 6개 회사 등으로 분할 민영화하는 것을 강행하였다. 민영화 직전 국철의 누적 채무는 37조엔에 이르렀다.

민영화 이후 만 25년이 지난 현재, 일본의 교통운수성은 철도 민영화를 통해 종업원들의 고객에 대한 태도 변화, 운임의 동결, 사고 감소, 경영 흑자 등 매우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평가 보고서를 누리집에 게재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 공익성, 안전성, 지역 사회와의 관계 등 전반적인 면을 고려하면 일본 정부의 평가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측면이 많다.

민영화의 명분이었던 재정적자는, 2011년 정부 보고서에 의하면 2009년 말에 25조엔의 채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경영 구조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속철을 경영하는 제이아르동일본 등 3개 대기업은 흑자를 내고 있지만 재래선을 가진 기업은 대부분 적자 상태이다. 철도 민영화 이후 무엇보다 큰 변화는 채산성이 낮은 재래선에 대한 폐지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고속화도 더뎌 지역 격차 및 소외 현상의 심각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국철 민영화를 추진한 나카소네는 “국철 노조가 (사회당의 지지 기반인) 총평의 중심이었고, 민영화의 목적은 이 국철 노조를 분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2005년 11월25일, <엔에이치케이> 일요토론). 철도 민영화의 본질은 결국 진보적인 노동조합 및 혁신 정당을 무력화시켜 장기적인 보수 사회를 만들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나카소네의 예상대로 민영화 직전 27만명이 넘었던 국철 노조원들은 민영화 직후 4만명으로 급감하였으며, 제이아르로 재채용되지 않고 해고된 노조원은 8만명이 넘었다. 그 결과 총평은 해체되고 노사 협조주의를 표방한 렌고(연합)로 통합돼 일본의 전투적 노동운동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민영화를 둘러싼 노조원 및 정치 세력들의 사분오열로 인해 현재까지도 일본 사회운동의 대립과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총평의 지지 기반을 잃은 사회당은 이후 해체됐고, 현재는 사회민주당으로 일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혁신 세력의 붕괴는 거대 보수 여당의 등장과 야당의 전면 보수화를 가져왔다.

민영화 이후 공공성과 안전보다 이윤과 경영 논리를 앞세운 철도 운영은 철도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극도로 강화시켜왔다. 민영화 과정에서만 100명이 넘는 자살자가 속출했으며,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야 하는 ‘공포정치’의 현장 분위기는 건널목의 빨간 신호에도 불구하고 열차의 속도를 높이는 폭주 운전을 강요하고 있다. 2005년 4월에 발생한 제이아르서일본 아마가사키선 탈선 사고(107명 사망)는 민영화 이후 일본 철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국가 기간산업의 공공성을 포기하고, 인권 및 민주적인 프로세스를 무시한 채 국철 노조원들의 배제를 목적으로 한 철도 민영화를 인정한 그때부터 일본 사회는 모두가 폭주하는 기관차에 타게 된 것이다.

30년 뒤 한국 사회가 다시 역사의 기로에 서 있다. 마지막까지 부당 해고에 저항하며 원직 복직을 위해 근무 역 주변에서 20년 넘게 싸워온 1047명의 일본 국철 노동자들은 언제나 한국 노동자들에게 연대를 표방해 왔다. “한국은 우리와 같은 길을 가지 않도록 바랍니다. 우리가 얻은 교훈은 이기더라도 지더라도 노동자는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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