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29 19:21
수정 : 2013.12.2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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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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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탄생 120돌. 중국의 추모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중국인 91%가 여전히 마오를 경모·존중한다는 조사가 나왔다. 마오가 다시 ‘신’(神)으로 돌아온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상징인 베이징의 천안문에는 마오가 신처럼 모셔져 있고 지폐에는 거의 다 마오의 초상이 박혀 있다. 어디를 가나 마오의 글씨로 된 제호가 보인다. 그런 마오를 중국의 ‘신좌파’들은 중국의 신(神)이자 혼(魂)이라고 한다. 마오는 중국인들에게 신으로 돌아온 것일까?
뭐니 뭐니 해도 중국인들은 마오를 ‘망국멸종’(亡國滅種)의 위기에서 중국을 구한 ‘위대한 구원의 별’(大救星)로 인식하고 있다. 덩샤오핑도 마오가 없었으면 중국인들이 계속 암흑 속에서 헤맸을 것이라고 했다.
마오의 혁명 역정은 처절하고도 화려하다. 28살에 공산당 창당 멤버가 된 뒤부터 2만5천리 장정과 같은 파란곡절을 겪으면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위기에서 중국 혁명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폭풍과 같은 ‘혁명’ 과정에서 저우언라이와 같은 당대 최고의 혁명가들인 마오의 전우들은 그를 ‘개인숭배’할 정도로 떠받들었다. 인민들은 그를 ‘태양’으로 모셨다. 결국 마오와 그의 전우들은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사분오열된 중국을 도탄 속에서 해방시켰다.
그 후의 마오는 말 그대로 ‘신’이었다. 마오의 공적은 신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다. 마오가 세상을 뜨자 중국인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러던 마오는 점차 ‘신단’(神檀)에서 ‘인간사회’로 내려왔다. 중국인들은 신이 아닌 진솔한 마오를 만나게 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마오의 무엇을 보았을까? 바로 마오의 ‘초인간적 재능’과 ‘인격적 매력’이 아닌가 싶다.
마오쩌둥에게는 혁명가, 정치가, 군사가, 사상가, 전략가, 이론가, 철학가, 역사가, 시인, 서예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마오는 이 모두를 최정상에서 성공시켰다. 군인 생활을 반년밖에 못했지만 공산당이 치른 거의 모든 전투를 직접 지휘했다. 그 전쟁 와중에 수많은 노작을 남기고 호연지기(浩然之氣)의 시구도 남겼다. 거침없이 호방한 서예체는 시와 함께 정상에 올라 있다. 마오처럼 중국 역사와 고전에 해박한 사람도 드물다.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중국에서 마오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한마디로 마오는 “초인간적인 힘”을 보여준 것이다.
중국인들이 본 진솔한 마오의 인격적 매력은 무엇일까. 가장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수많은 ‘청렴’이 아닐까 싶다. 마오가 20년 입었던 잠옷은 마지막에 73곳이나 기운 누더기였다. 마오는 생전에 자기의 생일을 기념하지 못하게 하였다. 중국 어디에도 마오의 이름으로 명명된 곳이 없다.
마오는 자기의 역사를 왜곡하지 않았다. 마오는 정치운동을 많이 벌였지만 스탈린과 달리 정적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사람 머리는 부추와 달리 한번 베면 다시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마오가 스탈린처럼 정적을 단 한명이라도 잔혹하게 마음대로 척결했다면 많은 중국인들은 마오에게 등을 돌렸을 것이다.
시진핑이 말했듯이 마오는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 마오의 가장 엄중한 과오는 바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중국을 동란에 빠뜨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한 것이다. 마오가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것은 자기들이 수천수만 열사들의 희생으로 일궈놓은 사회주의 정권이 위로부터 아래로의 자본주의 회복 탓에 무너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오는 새로운 대중혁명으로 사회주의를 지키려 하였던 것이다. 마오는 자기가 죽은 뒤 자본주의로 복귀하면 인민들이 다시 도탄에 빠진다고 생각했다. 마오의 집념은 강했다. 많은 중국인들은 문화대혁명도 마오 평생의 집념과 이상이 큰 몫을 한 것으로 여긴다.
결국 중국인들은 이제 와서 인간으로서의 마오를 경모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마오쩌둥을 인간으로 보기에 그가 범한 과오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이른바 ‘마오파’(毛派)라고 하는 좌파, 신좌파들이 마오의 시대를 미화하지만 이제 마오 시대로 돌아가자는 중국인은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없다. 마오는 이젠 한 시대를 풍미한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존경받을 뿐인 것이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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