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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11 18:48 수정 : 2015.01.11 18:48

1986년 필자는 평양역에서 맞은편 빌딩에 내붙은 “우리식대로 살아가자”는 구호를 인상깊게 보았다. 북한은 그때를 가장 휘황했던 시기라 한다. 학자들이 농업과 경공업, 수출 관련 토론을 텔레비전에서 펼치기도 했다. 중국식 농촌개혁도 실험해 봤다. 북-중 양국 정상들의 상호 왕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중국의 천안문 사건, 동구사회주의권 붕괴, 소련의 해체가 아니었다면 ‘북한식 개혁개방’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런 북한에 1990년대 중반, 전대미문의 기근이 덮쳤다. 해마다 갔던 북한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못 구한다’는 속담 그대로였다. 1869년 ‘기사년 함경도 대기근’이 조선인들을 간도 지방에 대거 몰리게 했던 것과 비슷했다고 할까. 수천수만의 북한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 국경 너머 동북지방으로 밀려들었다. 수천수만명이 굶어 죽는 비극이 글로벌시대에 일어났다. 누구 탓일까. 중국은 1950년대 말 이른바 ‘3년 자연재해’라는 전국적인 대기근을 겪었다. 수천만의 아사자가 속출했다. 결론은 ‘천재(天災) 3할, 인재(人災) 7할’이었다. 중국은 자류지(개인적으로 경영할 수 있도록 한 땅), 자유시장, 자주경영과 포산도호(가정도급제)를 허용하는 임시조처를 했다. 덩샤오핑이 ‘흑묘백묘론’을 내놓았던 시점이었다. 불과 2년 만에 먹는 문제가 해결됐다.

북한도 2002년 7월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내놓았다. 경제가 조금 호전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조치’에 그쳤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년 가까이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 원인을 외부에만 돌리며 남 탓만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원인은 바로 계속 낡은 틀에 갇혀 있으면서 개혁을 단행하지 못한 데 있다. 북한에 간 중국인들 거의 모두가 중국식 농촌개혁을 권고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이동풍 격이었다. 북한은 중국식 개혁을 자본주의로 보았고, 북한한테 자본주의는 손오공을 통제하는 ‘긴고주’(머리의 고리를 조이는 주문)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김정은 체제 3년은 김정일 시대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해 ‘5·30노작’에서 김정은은 1990년대 중반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 경제와 인민생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경제일꾼들은 물론 모든 일꾼들이 깊이 반성해 봐야 한다고 했다. 전례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어찌 보면 과거에 대한 부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낡은 틀과 격식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했다. 경제 문제를 풀자면 결정적으로 경제 관리 방법을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변화를 강조한 것이다. 되돌아 보면 김정은은 집권 초기부터 줄곧 변화를 강조했다. 내각 주도하에 이뤄진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에 관한 연구는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사실상 개혁개방 실험단계에 들어섰고 그것은 일회성 이벤트나 잠정조처로 끝나지 않고 있다. 그 결실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와 마찬가지로 농업에서 맺어지고 있다. 지난해 100년 만의 대가뭄 속에서도 전해에 비해 농업이 증산한 것은 ‘포전담당제’라고 하는 개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과 같은 처절한 경험을 하면서도 끝끝내 농촌의 ‘분조’를 쪼개지 못했다. 분조를 사회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간주한 것이다. 이게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 바뀌었다. 분조가 포전담당제로 쪼개진 것이다. 중국의 가정도급제와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북한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농민들이 명실공히 포전의 주인이 되고, 포전을 자기 집 텃밭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풀지 못했던 먹는 문제가 풀린다고 할 수 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북한의 ‘우리식 경제 관리 방법’은 변화의 핵심이다. 성공하면 변화가 또다른 변화를 불러와 새로운 북한을 잉태할 것이다. 개혁이 개방을 불러오자면 무엇보다 험악한 주변 환경을 바꿔야 할 것이다. 대외관계에서도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마침 북한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핵실험을 임시로 중단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것이 임시방편이 아닌 개혁의 주변 환경을 바꾸려는 발상의 전환이라면 새로운 변화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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