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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15 19:01 수정 : 2015.11.15 22:33

안보법제 반대운동이 전에 없을 만큼 고양돼 내각 지지율이 떨어졌음에도 아베 신조 총리는 자신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방자함을 고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헌법과 민주주의의 조리(條理)를 무시하고 있다. 일본 헌법 53조는 ‘중·참의원에서 4분의 1 이상의 의원의 청구가 있으면 내각은 임시국회를 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야당은 10월 말 아베 내각에 임시국회를 열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아베 내각은 이 조문에 ‘며칠 이내’라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임시국회를 소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분명한 헌법 위반이지만, 최고 권력자가 헌법을 무시하는 것들이 (현재 일본에선)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권력의 방자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례는 오키나와에서 진행 중인 미 해병대의 신기지 건설이다. 일본 정부는 미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를 폐쇄하는 대신 나고시 헤노코에 신기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오키나와 현민은 나고시 시장 선거,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 중의원 선거 등에서 신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후보자를 당선시켰다. 민주주의의 절차를 통해 현민은 오키나와 기지 건설에 “노”를 외치고 있다. 이를 받아들여 오나가 다케시 지사는 기지 건설을 위한 해면 매립 공사의 허가를 취소했다. 지역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반대하고 있는 이상 중앙정부는 주민들과 대화를 해서 타협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도쿄 경시청의 기동대를 오키나와에 투입해 지역 주민들의 반대운동을 진압할 계획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면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의 식민지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게 된다. 식민지의 주민은 국제법적으로는 자국민이고, 국내법적으로는 외국인으로 정의되는 경우가 있다. 오키나와 사람들도 국내법적인 권리를 점점 빼앗기는 중이다.

중앙정부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유의 하나로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들 수 있다. 15년 전까지 자민당에는 오키나와를 배려하는 정치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2차대전 말기 오키나와에서 지상전이 벌어져 많은 현민이 희생되고, 전후엔 미군 통치 아래 놓였다는 사실에 속죄의식이 있었다. 전쟁을 직접 아는 시대의 정치가들은 전후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오키나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겸허히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그런 역사 인식을 갖는 사람은 없다. 일개 지방이 멋대로 국책에 반대한다면, 힘으로 국책을 실현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강권적 지도자가 국가의 중추를 점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전후 체제로부터 탈각을 제창하고 있지만, 전후를 부정함으로써 오키나와의 아픔에 대한 감수성을 내팽개치고 있다.

역사적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시아 주변국과 국제적 마찰이 커지는 것과도 연결된다. (이달 초) 일·중·한 정상이 오랜만에 만나 회담한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나 난징 사건의 평가 등에서 일본과 중·한 양국이 대립하는 구도는 극복되지 않았다. 일본의 지도자가 정말로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의 정신을 받아들여 주변 국민들에게 속죄의식을 갖는다면, 피해자 구제 방법이나 역사적 진실 규명 등에 대해 일본 나름의 주장을 하더라도 이웃 나라들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입으로는 무라야마 담화의 계승을 말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역사 수정주의를 공언하는 정치가가 다수 존재한다.

난징 사건의 자료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록됐을 때 일본 정부와 자민당은 유네스코에 항의하고 분담금 지급을 정지한다는 말까지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 건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일본은 중국에 반론하기 위해 외무성과 전문가의 의견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그러나 전문가 의견서에 난징 사건 부정파로 보이는 학자의 저서를 인용해 일본의 인상을 나쁘게 하는 역효과가 생겼다.”(6일치 조간)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즉, 일본 정부 전체가 넷우익과 역사수정주의에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후의 종료란 말 그대로 일본이 야만국으로 전락하는 위기인 셈이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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