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1.10 19:00
수정 : 2016.01.10 19:00
새해 정초부터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자국민을 먹여 살리는 게 대량파괴무기의 개발보다 더 우선이 아니냐는 분노가 느껴질 뿐이다.
일본의 국내정치와 관련해 생각해 보자면, 이 뉴스는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언론에 대한 대량파괴무기가 될 수도 있다. 핵무기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실험이 수소폭탄의 폭발이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 목소리가 많다. 미디어가 정확성을 기한다면 이 실험을 핵실험이라 부른 뒤, 북한이 수폭 실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해야 한다.
최근 정부의 홍보기관이 된 것 같은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의 뉴스에선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수폭 실험이라고 되풀이하고 있다. 또 수폭은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의 수백배 위력을 갖고 있다거나, 과거 미국이 시행한 수폭 실험의 영상을 내보내며 이래도 무섭지 않으냐는 식으로 시청자들을 겁주고 있다. 또 방송에 초대된 한반도 전문가는 수폭은 소형이기 때문에 탄도미사일에 탑재한다면 미국 동부를 공격할 수 있게 되고, 한반도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이 (북한의) 핵 공격을 우려해 한국이나 일본을 방어할 의욕을 상실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의 과대 선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일본의 안보가 무효화된 것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려는 언설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날은 우연히 일본 정기국회의 각 당 대표 질문이 이뤄지는 날이기도 했다. 이에 관한 <엔에이치케이>보도도 지독한 것이었다.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가 저소득 연금수령자들에게 3만엔을 현금으로 지급하려는 아베 정권의 정책에 대해 선거를 노린 ‘선심성 예산’이라고 비판해 여야 간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엔에이치케이>는 오카다 대표가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는 부분만을 소개하고, 이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가 단호한 자세로 대응하겠다고 답변한 부분만 짜깁기해 전했다. 일본의 방송은 북한의 핵위협을 이용해 일본 국내의 정상적인 정치 논쟁의 틀을 무너뜨릴 수 있다.
위기를 구실삼아 공포심을 조장하고, 현 정권이 추진하는 안전보장 입법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려는 의도가 아른거린다. 그러나 지금은 냉정함이 필요한 때다. 한가지 명확한 것은 핵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력을 행사한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이다. 이라크 전쟁과 같이 체제 전복을 기도한다면 북한은 자포자기 상태로 몰려 핵전쟁이 현실화될 우려가 있다. 일본의 보수파는 헌법 9조가 있어서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수 없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력이 존재해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압도적 현실이다.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반도의 핵 위기를 해결하는 문제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핵개발을 추진하는 독재국가에 대한 대응은 위험물을 처리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중함과 주도면밀함이다.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핵의 위협을 제거하는 방법은 교섭에 의한 정치적 해결 이외엔 없다. 군사력의 사용을 지향하는 아베 정권의 안보정책은 일본과 동아시아의 안전을 강화하지 못한다.
올여름엔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은 여당과 개헌에 찬성하는 일부 야당이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획득할지 여부다. 아베 총리 자신이 새해 기자회견에 이런 의도를 표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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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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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일본에선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커다란 시민운동이 출현했다. 이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정권의 헌법 파괴를 저지할 것을 간절히 소망하며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야당이 이런 움직임에 호응해 아베 정권과 대결 자세를 명확히 할지 여부다. 여당이 선거에서 낙승하면 2016년은 전후 민주주의의 붕괴 과정에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해가 된다. 미디어에도 야당에도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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