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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0 22:29 수정 : 2016.03.20 23:27

진나라의 30만 군대가 조나라의 거록을 포위했을 때 항우는 조나라를 구하려고 20만명의 초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황하를 건넜다. 황하를 건넌 항우는 탔던 배를 침몰시키고 밥솥까지 부숴버렸다. 되돌아갈 배도, 밥 지어 먹을 솥도 없는 병사들은 이판사판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항우는 자기 군대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적군을 대파한다.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한국의 개성공단 폐쇄와 북한의 핵 공갈을 보면서 파부침주의 장렬함이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결국 올 것이 왔기 때문이 아닐까? 박근혜 정부는 마지막 결의라는 각오로 끝장을 보려 하고 있다. 북한은 막가파식 핵 공갈로 역시 파부침주식 대응 태세를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가 육십갑자를 돌고 다시 한국전쟁 전 대결의 패턴으로 돌아간다. 어찌 보면 타고난 운명이 이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은 파부침주의 이판사판으로 70년의 악연을 끊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포기뿐만 아니라 폭정 종식까지 역설하고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을 호소하고 있다. 북한의 정권교체, 붕괴도 공공연히 거론한다. 그 시각에서 봤을 때 북한이 사면초가에 처한 지금이야말로 ‘천시지리인화’를 구비한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의 핵실험과 유엔 제재가 ‘천시’라면 북한을 육해공으로 봉쇄하는 ‘지리’에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낸 ‘인화’까지 갖추었으니 말이다. 결국 파부침주의 배수진을 친 결과로, 그토록 추진하고 싶었던 새로운 패턴을 가동시켰다 하겠다.

냉전이 종식된 뒤 남북관계에는 여러 가지 패턴들이 등장했다. 지난 패턴들은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라는 덩샤오핑의 말처럼 실천을 거쳐 호불호의 평가를 받았다. 작금의 새로운 패턴도 실천을 거쳐야 옳고 그름을 평가받을 것이다. 문제는 이 실천이 거대한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어느 패턴과도 달리 북한의 정권교체와 ‘폭정’ 종식을 공공연한 목표로 내세우기 때문이다. 빌미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제공했다 하지만 이젠 마지노선을 넘은 것 같다. 결국은 ‘통일대박론’의 실체가 이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찌됐든 북한 정권교체와 ‘폭정’ 종식을 목표로 내세우는 순간부터 남북관계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서로의 ‘평양 점령’이나 ‘서울 해방’과 같이 화약내를 풍기는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이 정권교체와 ‘폭정’ 종식을 선언하면서 북한더러 핵을 포기하라는 것은 투항 아니면 붕괴하라는 것이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 내오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북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좁아질수록 위험은 커질 것이다.

북한 역시 핵 공갈로 한국을 위협하는 순간부터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을 넘었다. 이제까지 북핵 문제가 북-미 간 이슈였다면 이젠 남북한의 문제로 확실히 자리잡게 해주었다. 결국 ‘정당’했던 자기의 과거를 부정하고 ‘악행’이라고 했던 한·미의 주장을 정당화시키는 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러를 안보리 제재로 떠민 것도 결국 한·미의 압력보다 북한의 파부침주라 해야 할 것이다.

이젠 서로가 마지노선을 넘는 남북관계이다. 모두 파부침주로 퇴로를 차단하고 최후의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를 보이고 있다. 출구는 어디일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작금의 세계는 미-러, 미-중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전략 요충지들의 전란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전쟁 난민이 유럽을 강타하고 이슬람국가(IS)라는 괴물로 세계가 경악한다. 또다른 ‘괴물’ 트럼프에 미국이 열광한다. 혼돈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중국의 남해, 동해, 남아시아는 바람 잦을 날이 없다. 중-미가 한반도에서 다시 부딪치고 있다. 도처에 위기이다. 동방의 화약고 한반도는 안녕할까? 심히 우려스럽지만 이제 화살은 활시위를 떠난 것 같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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