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4.03 19:02
수정 : 2016.04.03 19:45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왈츠는 더 많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할수록 억지 체계도 더 강해질 것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결과적으로 핵무기 사용에 더 신중해지고 갈등 상황을 고조시키려는 의지도 약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때를 풍미하던 왈츠의 이론은 이제 소수파가 됐다. 특히, 지난해 이란과의 핵협상 타결로 왈츠의 이론은 완전히 틀렸음이 입증됐다. 경제적 제재를 해제하는 대가로 이란은 핵능력 추구를 중단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 핵무기 담론은 ‘왈츠주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남한 안팎에서 북한에 비확산을 설교하는 데 지쳤고 답이 없다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왈츠의 주장처럼, 이들은 동아시아에서 더 많은 핵무기가 더 나은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도 남한과 일본이 핵무기를 획득해야 하며, 이는 미국에 대한 두 국가의 의존성과 그에 상응하는 미국 납세자들의 비용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다른 발언들처럼, 이 역시 면밀한 검토 뒤에 나온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트럼프는 대규모 해외 미군 주둔을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 내 진보와 보수 진영의 오래된 합의에 도전하고 있다.
남한 사람들도 자체 핵능력 보유를 싫어하지 않는다. 지난 2013년 2월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조사를 보면, 3분의 2가 핵무기 보유를 원하고 있다. 최근 남한의 한 일간지 여론조사도 거의 동일한 결과를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상층 지도자들은 그런 전략을 거부했지만, 다른 영향력 있는 목소리들은 금기시됐던 이 주제를 꺼내고 있다. 예를 들어, 보수적 신문인 <조선일보>는 북한과 공평한 경쟁의 장을 위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을 협박해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핵옵션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들 가운데 어떤 것도 특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우선, 남한은 북한에 대해 압도적인 재래식 군사적 우위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핵무기가 확실한 억지력을 제공한다. 북한은 다소나마 남한과의 군사력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지극히 저렴한 핵능력에 투자해왔다.
남한이 핵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북한에 대해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압박하는 것도 효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은 중국 말을 듣지 않고 있다. 또한 중국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 제재는 지지하지만, 북한의 체제 변화까지 추진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중국의 안보, 지방 경제, 탈북자들의 유입 가능성 등 실질적인 위험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남한이 핵무기개발을 추진한다면 가장 재빠르게 대응할 나라는 아마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상당한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고, 아마도 2년 안에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핵클럽’ 확산이 남한과 일본에서만 멈출지도 분명하지 않다.
아시아 국가들이 의도적으로 상호 핵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판의 위험은 항상 존재한다. 더 많은 핵무기가 존재할수록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 이미 냉전 시대에 세계는 핵무기로 인한 전멸을 가까스로 피한 경험이 여러번 있다.
세계는 지난해 이란과 핵협상을 타결함으로써 다시 한번 재앙을 피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에 군사적 공격을 검토해왔다. 게다가 이란이 핵클럽에 들어가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그 뒤를 이었다면 얼마나 중동이 불안정해졌을지 상상해보라.
남한이 북한 핵 근처에 살면서 취약하다고 느끼는 것은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핵무기 보유가 이런 느낌을 없애지는 못한다. 냉전시대에 미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진정한 해법은 방정식에서 핵무기를 빼는 것이지, 더하는 것이 아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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