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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18 18:31 수정 : 2017.06.18 19:29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북한의 전성기였던 1986년 추석날 필자는 평양에서 개성을 찾았다. 10년 뒤인 고난의 행군 시기 같은 길을 밟았고, 그로부터 다시 10년 뒤인 2000년대 중반에도 똑같은 코스를 반복한 적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변화는 크지 않았다. 3년 전 다시 10년이 지나 가 본 북한은 많이 달라졌다. 그때 그 변화를 필자는 이곳 지면에 ‘북한의 조용한 변화와 남북관계’라는 칼럼으로 소개한 적이 있다. 북한의 ‘5·30 조치’를 전하며 “앞으로 2~3년이면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던 북한 학자들의 말도 실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 이번에 또다시 찾은 북한은, 지난 수십년간 느끼지 못했던 변화를 보여주었다. 이번의 변화는 여명거리 같은 대형 건축물뿐 아니라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거리에는 음식점과 상점들이 훨씬 많아졌다. 택시는 거리 어디서나 쉽게 잡힐 만큼 보편화됐다. 예전엔 중국산이 대부분이던 평양 최대 부식품마트는 80% 이상이 북한산으로 바뀌었다. 평양 도처의 간이 매대에는 북한산 제품 광고도 붙어 있었다. ‘통일시장’ 안팎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였다. 거리 전체가 활기찬 분위기였다. 북한 학자들은 경제가 전체적으로 ‘증가세’라고 하였다. 3년 전 이야기했던 큰 변화의 약속이 이뤄진 것인가?

지난 3년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전례없는 고강도 제재를 받아왔다. 한국은 개성공단을 폐쇄했고, 아프리카까지 가서 북한을 고립시키며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북한은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자금과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다. 그럼에도 믿지 못할 변화가 일어났다.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5·30 조치’에서 “경제문제를 풀자면 결정적으로 경제관리 방법을 혁신해야 한다”고 한 김정은 위원장의 말에 답이 있지 않을까? 결국 이 “혁신”에 의해서, 일한 만큼 번 만큼 보수를 받는 경쟁 시스템이 구축돼간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북한 학자들은 그들의 조국이 “제 발로 걸어가는 경제를 건설한다”고 했다. 공장에서는 ‘자강력’과 ‘국산화’라는 구호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농장에서는 농장원들이 말끝마다 ‘포전(논밭) 담당제’를 이야기했다. 결국 ‘혁신’이 북한에 내재한 잠재력을 최대한 발굴하며 오늘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 아닐까?

북한의 변화는 수위를 높여만 가는 국제사회의 제재에, 지금껏 북핵 해결에 얼마큼 효과가 있었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제재를 가할수록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가속화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해결해야 할까? 제재가 북핵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제재를 강화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거기에 초유의 군사적 압박을 병행하는 것은 북한더러 핵을 포기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핵을 보유하라고 하는 것인가?

가령 한·미가 북한을 붕괴시킬 잡도리로 행했던 엄청난 노력을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에 조금이라도 쏟아부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주동적으로 축소 또는 중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5·24 조치를 주동적으로 해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두 북한에는 제재 이상의 압박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몇년간 북핵 문제에는 북한만 ‘올인’한 것이 아니었다. 한·미와 국제사회 모두가 ‘올인’해왔다. 그랬기에 북핵만 보이고 북한의 변화는 보이지 않은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사상 유례없는 제재와 봉쇄 속에서 이루어진다. 북한이 결코 개혁·개방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핵이 안전을 담보하기에 국방 공업의 첨단기술도 민수 공업에 돌리며 경제 건설에 몰입할 수 있다고 한다. 핵이 아닌 평화 체제, 북-미, 남북, 북-일 관계 개선이 북한의 안전을 담보할 때, 그래서 북한 전역이 경제개발로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에도 북한은 핵 개발에 ‘올인’할까? 선제조건만 제기하지 말고 한·미가 먼저 움직이면 안 되는가. 북한의 변화가 클수록 핵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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