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교수 2차 세계대전 때 세계는 파시스트 진영과 반파시스트 진영으로 갈라져 참혹한 ‘열전’을 치렀다. 그 후 세계는 다시 동과 서로 갈라져 세계적 규모의 ‘냉전’을 치렀다. 전세계가 미-소 두 진영으로 갈라져 수십 년 대결했다. 다만, 냉전은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지 않았다. 두 진영의 주역인 미국과 소련이 정면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학자 리처드 하스의 말을 빌리면, 핵이 ‘공포의 균형’을 이루지 않았다면 세계가 치른 전쟁은 ‘냉’전이 아니라 ‘열’전이 될 수도 있었다. 큰 틀에서 ‘냉전’은 ‘냉평화’였고, 그것은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안정된 질서였다. 그 냉전이 종식된 지 30년이 다가온다. 새로운 질서 구축기의 진통이랄까. 세계는 다시 혼돈기에 접어들었다. 금방 저물어간 지난 한 해는 혼돈의 극치였다. 중동은 혼란에 빠졌고 유럽은 분열상을 보이며 테러와 난민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동안 ‘상대적 평화’를 누려온 동북아시아도 북한의 핵·미사일로 심하게 요동쳤다. 북한은 21세기 백주에 핵을 터뜨리며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이 시대 최대의 혼란상을 선보였다. 유엔이 유례없는 제재를 가할수록 도전은 거칠었다. 여기에 트럼프와 김정은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한반도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를 판이다. 동서 냉전 시기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글로벌화, 경제 블록화 시대에 버젓이 연출되고 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도 지극히 냉전 시대의 방식이다. 냉전 시기 서방이 동방 진영에 펼쳤던 봉쇄 정책이 고스란히 북한에 재현되고 있다. 중국도, 러시아도 자기가 당했던 방식 그대로 북한을 옥죄고 있다. 미국은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총집결하면서 전쟁이 다가왔다고 한다. 북한은 그런 미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한다. 동서고금에 없는 강육약식(强肉弱食)이다. 결과적으로 동북아의 혼란은 가중된다. 이 혼란은 어디서 왔고 어디가 끝일까? 많은 이들은 북한이 두 손을 들고 나오는 날이 끝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북핵이 ‘맹아’ 상태였을 때 그 ‘자양분’이 북-미 갈등과 충돌이었다면, ‘성숙’ 단계에서는 미-중 갈등으로 비화해왔다. 당대 주요 모순인 미-중 갈등에 의해 다른 갈등들이 파생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을 ‘신형 대국관계’로 풀어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려 한다. 그 첫 시험대가 북핵이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북핵을 매개로 날로 거세졌다. 자의든 타의든 중국의 대북 제재는 그런 미국의 압박과 정비례하며 가중됐다.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으로 미-중은 ‘신형 대국관계’의 문턱을 넘어서는 듯했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신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중국을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태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확장됐다. 무엇을 겨냥한 것일까.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구상의 ‘일로’는 미국의 전략 범위와 겹친다. ‘일대일로’가 미국의 ‘예봉’을 피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로 뻗으려고 한 시도였다면, ‘인도-태평양’ 전략은 그런 중국을 겨냥한 여래불의 손바닥과 같다. 미국은 냉전의 유산인 동맹 관계를 포함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 냉전 질서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이러한 미-중의 힘겨루기는 미-중 관계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동북아의 혼란도 그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스스로 미-중 관계를 좌지우지한다고 ‘자부’하지만, 결국은 미-중 게임의 소스 구실일 수 있다. 새해 전세계의 시선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쏠리고 있다. 핵무력 완성과 경제 건설 매진, 평화 공세가 선포된다면 미-중 게임은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 것이다. 그것이 혼란을 가중시킬지 아니면 질서를 지향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나의 계기인 것만은 틀림없다.
칼럼 |
[세계의 창] 새해 중-미 관계 속의 혼돈과 질서 / 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2차 세계대전 때 세계는 파시스트 진영과 반파시스트 진영으로 갈라져 참혹한 ‘열전’을 치렀다. 그 후 세계는 다시 동과 서로 갈라져 세계적 규모의 ‘냉전’을 치렀다. 전세계가 미-소 두 진영으로 갈라져 수십 년 대결했다. 다만, 냉전은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하지 않았다. 두 진영의 주역인 미국과 소련이 정면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 학자 리처드 하스의 말을 빌리면, 핵이 ‘공포의 균형’을 이루지 않았다면 세계가 치른 전쟁은 ‘냉’전이 아니라 ‘열’전이 될 수도 있었다. 큰 틀에서 ‘냉전’은 ‘냉평화’였고, 그것은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안정된 질서였다. 그 냉전이 종식된 지 30년이 다가온다. 새로운 질서 구축기의 진통이랄까. 세계는 다시 혼돈기에 접어들었다. 금방 저물어간 지난 한 해는 혼돈의 극치였다. 중동은 혼란에 빠졌고 유럽은 분열상을 보이며 테러와 난민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동안 ‘상대적 평화’를 누려온 동북아시아도 북한의 핵·미사일로 심하게 요동쳤다. 북한은 21세기 백주에 핵을 터뜨리며 세계 질서에 도전하는 이 시대 최대의 혼란상을 선보였다. 유엔이 유례없는 제재를 가할수록 도전은 거칠었다. 여기에 트럼프와 김정은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한반도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를 판이다. 동서 냉전 시기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글로벌화, 경제 블록화 시대에 버젓이 연출되고 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도 지극히 냉전 시대의 방식이다. 냉전 시기 서방이 동방 진영에 펼쳤던 봉쇄 정책이 고스란히 북한에 재현되고 있다. 중국도, 러시아도 자기가 당했던 방식 그대로 북한을 옥죄고 있다. 미국은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총집결하면서 전쟁이 다가왔다고 한다. 북한은 그런 미국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한다. 동서고금에 없는 강육약식(强肉弱食)이다. 결과적으로 동북아의 혼란은 가중된다. 이 혼란은 어디서 왔고 어디가 끝일까? 많은 이들은 북한이 두 손을 들고 나오는 날이 끝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북핵이 ‘맹아’ 상태였을 때 그 ‘자양분’이 북-미 갈등과 충돌이었다면, ‘성숙’ 단계에서는 미-중 갈등으로 비화해왔다. 당대 주요 모순인 미-중 갈등에 의해 다른 갈등들이 파생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을 ‘신형 대국관계’로 풀어 투키디데스 함정을 피하려 한다. 그 첫 시험대가 북핵이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북핵을 매개로 날로 거세졌다. 자의든 타의든 중국의 대북 제재는 그런 미국의 압박과 정비례하며 가중됐다. 북핵 문제에 대한 협력으로 미-중은 ‘신형 대국관계’의 문턱을 넘어서는 듯했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신국가안보전략을 통해 중국을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는 ‘전략적 경쟁국’으로 규정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태 전략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확장됐다. 무엇을 겨냥한 것일까.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 구상의 ‘일로’는 미국의 전략 범위와 겹친다. ‘일대일로’가 미국의 ‘예봉’을 피해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로 뻗으려고 한 시도였다면, ‘인도-태평양’ 전략은 그런 중국을 겨냥한 여래불의 손바닥과 같다. 미국은 냉전의 유산인 동맹 관계를 포함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 냉전 질서로의 회귀라고나 할까. 이러한 미-중의 힘겨루기는 미-중 관계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동북아의 혼란도 그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스스로 미-중 관계를 좌지우지한다고 ‘자부’하지만, 결국은 미-중 게임의 소스 구실일 수 있다. 새해 전세계의 시선이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 쏠리고 있다. 핵무력 완성과 경제 건설 매진, 평화 공세가 선포된다면 미-중 게임은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 것이다. 그것이 혼란을 가중시킬지 아니면 질서를 지향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나의 계기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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