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일본에서는 헌법 개정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는 헌법 제9조(평화헌법으로도 불리는 현행 헌법의 핵심 조항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를 중심으로 개헌을 실현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개헌파들이 헌법을 개정하고 싶어 하는 것은 헌법 자체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 안전보장 환경의 악화를 이유로 전수방위(상대방에게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에야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며, 그 행사는 필요 최소한에 국한한다는 원칙)라는 안전보장 정책의 토대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일본 정부는 기존의 헌법 아래에서도 일-미 안보조약(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을 규정한 조약으로 미-일 동맹의 근간으로 불린다) 적용의 고도화와 방위력 정비를 꾀해 왔다. 헌법, 특히 제9조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자세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1930년대부터 40년대 전반까지 식민주의와 침략 전쟁으로 아시아인들에게 큰 고통을 끼친 것에 대한 반성과 근신이 제9조의 근저에 있는 정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본은 군사 대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시아 질서의 하나의 기반이었다. 전후 70년 이상이 흐르고 그러한 저자세가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이 늘어났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중에 왜 일본만 저자세여야만 하는 것인가. 인류 역사상 전쟁은 허다한데도 왜 일본만 침략자라고 불리는 것이 계속되어야 하느냐.’ 이러한 불만이 보수파들에게 쌓여 왔다.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한 게 발각되고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일본이 저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일본은 고도의 무기를 갖추고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멈추기 위해 북한을 공격할 때 일본도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분위기가 헌법 제9조 개정을 추구하는 논의의 배후에 존재한다. 일본의 보수파에게 북한과 대화를 해서 평화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약한 무리들은 불쾌하고 눈에 거슬린다. 일본이 저자세를 버리기 위해서는 북한은 항상 악역이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늘 긴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아베 총리가 평창 겨울올림픽 때문에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 한-미 군사훈련을 하라고 요구한 것에서도 이러한 발상이 드러난다. 이는 비상식적이고 오만한 내정 간섭이다. 하지만 그러한 오만이 일본 정치 지도자들과 외교 관료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이런 종류의 자기중심주의가 더욱 퍼지는 것은 일본에 커다란 불행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출전하는 자메이카 팀을 위해서 도쿄 시타마치(일본 서민들의 전통 상점가)의 동네 작은 공장들이 썰매를 제공한다는 ‘미담’은 몇년 전부터 선전돼 왔다. 하지만 일본제 썰매는 느린데다 차체 검사에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메이카 팀은 라트비아제 썰매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본 공장은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신문들이 보도했다. 성능이 나쁘니까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내용도 없는 미담을 화려하게 쏘아올렸으나, 정작 일본제 썰매가 수준이 낮다는 얘기는 빼버리는 것은 앞으로의 일본을 암시하는 듯하다. 일본인들이 일부러 비굴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잘못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는 능력을 방기한다면 일본은 점점 쇠약해질 뿐이다.
칼럼 |
[세계의 창] 자기중심주의라는 병 / 야마구치 지로 |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일본에서는 헌법 개정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는 헌법 제9조(평화헌법으로도 불리는 현행 헌법의 핵심 조항으로,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를 중심으로 개헌을 실현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개헌파들이 헌법을 개정하고 싶어 하는 것은 헌법 자체에 부족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등 안전보장 환경의 악화를 이유로 전수방위(상대방에게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에야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며, 그 행사는 필요 최소한에 국한한다는 원칙)라는 안전보장 정책의 토대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고, 일본 정부는 기존의 헌법 아래에서도 일-미 안보조약(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을 규정한 조약으로 미-일 동맹의 근간으로 불린다) 적용의 고도화와 방위력 정비를 꾀해 왔다. 헌법, 특히 제9조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자세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1930년대부터 40년대 전반까지 식민주의와 침략 전쟁으로 아시아인들에게 큰 고통을 끼친 것에 대한 반성과 근신이 제9조의 근저에 있는 정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일본은 군사 대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시아 질서의 하나의 기반이었다. 전후 70년 이상이 흐르고 그러한 저자세가 불만족스러운 사람들이 늘어났다. ‘약육강식의 국제사회에서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중에 왜 일본만 저자세여야만 하는 것인가. 인류 역사상 전쟁은 허다한데도 왜 일본만 침략자라고 불리는 것이 계속되어야 하느냐.’ 이러한 불만이 보수파들에게 쌓여 왔다.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한 게 발각되고 핵·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일본이 저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일본은 고도의 무기를 갖추고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멈추기 위해 북한을 공격할 때 일본도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분위기가 헌법 제9조 개정을 추구하는 논의의 배후에 존재한다. 일본의 보수파에게 북한과 대화를 해서 평화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약한 무리들은 불쾌하고 눈에 거슬린다. 일본이 저자세를 버리기 위해서는 북한은 항상 악역이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늘 긴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아베 총리가 평창 겨울올림픽 때문에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 한-미 군사훈련을 하라고 요구한 것에서도 이러한 발상이 드러난다. 이는 비상식적이고 오만한 내정 간섭이다. 하지만 그러한 오만이 일본 정치 지도자들과 외교 관료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이런 종류의 자기중심주의가 더욱 퍼지는 것은 일본에 커다란 불행이다. 평창 겨울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에 출전하는 자메이카 팀을 위해서 도쿄 시타마치(일본 서민들의 전통 상점가)의 동네 작은 공장들이 썰매를 제공한다는 ‘미담’은 몇년 전부터 선전돼 왔다. 하지만 일본제 썰매는 느린데다 차체 검사에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메이카 팀은 라트비아제 썰매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본 공장은 계약 파기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하기로 했다고 신문들이 보도했다. 성능이 나쁘니까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내용도 없는 미담을 화려하게 쏘아올렸으나, 정작 일본제 썰매가 수준이 낮다는 얘기는 빼버리는 것은 앞으로의 일본을 암시하는 듯하다. 일본인들이 일부러 비굴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잘못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바로잡는 능력을 방기한다면 일본은 점점 쇠약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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