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교수 세계 유일의 냉전 상징인 남북 군사분계선이 지척이어서였을까. 평창 겨울올림픽은 명색 그대로 진한 ‘정치’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그동안 목말랐던 남북관계에 활력소를 부어놓은 듯했다. 문재인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평화의 장에서 남북 화합을 연출하여 꽉 막혔던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물꼬를 트려 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살얼음판에서 이뤄지는 다른 하나의 힘겨루기 같기도 했다. 미·일과 북한의 최고 수반이 지척에서 눈길도 주지 않는 광경은 그 힘겨루기의 화룡점정이었다. 몇년 악화일로를 걸어오며 전쟁 변두리를 들락거렸던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화해 분위기를 탔다면, 그것은 적어도 수도거성(水到渠成·물이 흘러 자연히 개천을 이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처럼 다뤄야 한다고 했다. ‘진정성’보다 ‘전략적’ 의도가 짙은 접근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보수 세력은 북한의 행위를 위장 평화 공세로 점찍었고 500명이 넘는 북한 젊은이들이 체제 선전으로 남한을 흔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 같은 체제 선전에 남한은 얼마나 동요하였을까? 지난 10년 북한 체제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악마화’돼왔다. 그 ‘지옥’의 젊은이 수백명이 ‘천당’에 와서 지옥을 ‘선전’하면 누가 누구를 세뇌하는 것인가? 15년 전 세워진 평양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1천명이 넘는 한국인이 수십 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경의선 육로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분단 후 최대 규모의 남한 참관단이었다. 남한의 버스, 남한 사람들의 패션, 그리고 얼굴빛과 행동거지가 당장 인구 200만 평양의 화제로 떠올랐다. ‘고난의 행군’에서 막 헤어난 북한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한다. 북한 학자들은 그런 흐름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남한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流水不腐). 지난 10년 한반도에서 발생한 무수히 많은 사건들은 남북의 흐름이 끊긴 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핵이 불러온 사상 유례없는 제재는 이 흐름을 더더욱 물샐틈없이 막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은 그 물꼬를 텄지만 그 흐름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남북 단일팀의 개막식 입장에 모두 기립하여 환호성을 질렀건만 펜스와 아베는 기립도 않고 박수도 보내지 않았다. 트럼프는 남북 화해 분위기에 사상 최대 제재라는 찬물을 끼얹었다. 평창 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면 다시 태풍이 몰려올 태세다. 10년이면 강산만 변한 게 아니라, 한국도 북한도 미국도 다 변했다. 남북관계도 10년 전과 다르다. 트럼프나 펜스는 20여년 전 국가적 재앙 속에 탈북한 이들의 ‘인권 스토리’로 미국과 세계를 격앙시켰지만, 이방카는 애초 한국에서 10~20대의 젊은 여성 탈북자들을 만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뤄지진 않았지만, 만약 그가 최근 탈북한 이들을 접촉했었다면 김정일 시대와 다른 그 무엇을 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시과경천(時過境遷·시간이 흘러 상황이 변함)에 맞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예와 똑같이 ‘우리민족끼리’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그 논리대로라면 남북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인 북핵 논의부터 ‘우리민족끼리’ 해야 한다. 북한이 북핵 문제에서 남한에 작은 성의만 보여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어쨌건 북한은 올해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평창에서 그 의지를 보여줬다. 우려했던 2·8 열병식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넘어갔다. 다가올 4월의 ‘태풍’도 찻잔 속에 가둘 수 있다면 6·15, 8·15 공동개최로 평창의 흐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흐름 속에서 한국이 미국을 줄기차게 설득해 나가면, 남북의 ‘전략적 접근’에도 진정성과 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4월 말 일본의 100명 의원단 방북설이 나온다. 늘 그랬듯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반드시 지역 내 긍정적 지각변동을 촉발하곤 했다.
칼럼 |
[세계의 창] 평창올림픽과 남북관계 / 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세계 유일의 냉전 상징인 남북 군사분계선이 지척이어서였을까. 평창 겨울올림픽은 명색 그대로 진한 ‘정치’ 색채를 띨 수밖에 없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그동안 목말랐던 남북관계에 활력소를 부어놓은 듯했다. 문재인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평화의 장에서 남북 화합을 연출하여 꽉 막혔던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의 물꼬를 트려 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살얼음판에서 이뤄지는 다른 하나의 힘겨루기 같기도 했다. 미·일과 북한의 최고 수반이 지척에서 눈길도 주지 않는 광경은 그 힘겨루기의 화룡점정이었다. 몇년 악화일로를 걸어오며 전쟁 변두리를 들락거렸던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화해 분위기를 탔다면, 그것은 적어도 수도거성(水到渠成·물이 흘러 자연히 개천을 이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처럼 다뤄야 한다고 했다. ‘진정성’보다 ‘전략적’ 의도가 짙은 접근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보수 세력은 북한의 행위를 위장 평화 공세로 점찍었고 500명이 넘는 북한 젊은이들이 체제 선전으로 남한을 흔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 같은 체제 선전에 남한은 얼마나 동요하였을까? 지난 10년 북한 체제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악마화’돼왔다. 그 ‘지옥’의 젊은이 수백명이 ‘천당’에 와서 지옥을 ‘선전’하면 누가 누구를 세뇌하는 것인가? 15년 전 세워진 평양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에 1천명이 넘는 한국인이 수십 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경의선 육로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분단 후 최대 규모의 남한 참관단이었다. 남한의 버스, 남한 사람들의 패션, 그리고 얼굴빛과 행동거지가 당장 인구 200만 평양의 화제로 떠올랐다. ‘고난의 행군’에서 막 헤어난 북한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한다. 북한 학자들은 그런 흐름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남한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流水不腐). 지난 10년 한반도에서 발생한 무수히 많은 사건들은 남북의 흐름이 끊긴 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북핵이 불러온 사상 유례없는 제재는 이 흐름을 더더욱 물샐틈없이 막고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은 그 물꼬를 텄지만 그 흐름은 아무래도 불안하다. 남북 단일팀의 개막식 입장에 모두 기립하여 환호성을 질렀건만 펜스와 아베는 기립도 않고 박수도 보내지 않았다. 트럼프는 남북 화해 분위기에 사상 최대 제재라는 찬물을 끼얹었다. 평창 뒤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재개되면 다시 태풍이 몰려올 태세다. 10년이면 강산만 변한 게 아니라, 한국도 북한도 미국도 다 변했다. 남북관계도 10년 전과 다르다. 트럼프나 펜스는 20여년 전 국가적 재앙 속에 탈북한 이들의 ‘인권 스토리’로 미국과 세계를 격앙시켰지만, 이방카는 애초 한국에서 10~20대의 젊은 여성 탈북자들을 만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뤄지진 않았지만, 만약 그가 최근 탈북한 이들을 접촉했었다면 김정일 시대와 다른 그 무엇을 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시과경천(時過境遷·시간이 흘러 상황이 변함)에 맞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예와 똑같이 ‘우리민족끼리’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그 논리대로라면 남북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인 북핵 논의부터 ‘우리민족끼리’ 해야 한다. 북한이 북핵 문제에서 남한에 작은 성의만 보여도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어쨌건 북한은 올해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평창에서 그 의지를 보여줬다. 우려했던 2·8 열병식도 찻잔 속의 태풍으로 넘어갔다. 다가올 4월의 ‘태풍’도 찻잔 속에 가둘 수 있다면 6·15, 8·15 공동개최로 평창의 흐름을 계속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 흐름 속에서 한국이 미국을 줄기차게 설득해 나가면, 남북의 ‘전략적 접근’에도 진정성과 신뢰가 쌓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4월 말 일본의 100명 의원단 방북설이 나온다. 늘 그랬듯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반드시 지역 내 긍정적 지각변동을 촉발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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