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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3.25 17:44 수정 : 2018.03.25 19:11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전쟁 변두리를 맴돌던 한반도에 신이 내린 마지막 기회의 ‘천시, 지리, 인화’가 찾아온 것 같다. 그 ‘천시’(天時)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촛불시위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정권이 같은 시대를 풍미하게 된 것이다. 비록 지난 한 해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와 문재인 정부의 가차 없는 제재가 한반도의 ‘불운’을 지속시킬 것 같았지만 결국은 이 천시가 새해 벽두에 상상도 못할 일들을 평창이라는 ‘지리’(地利)에서 펼쳐놓은 것이다.

많은 여론은 북한이 결국 가혹한 제재를 버틸 수 없어 두 손을 들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지난 수십년 “북한이 곧 붕괴한다”던 판단과 맥을 같이한다. 과연 그럴까?

북한은 지난해 핵 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급박하게 다그쳤다. 급기야 연말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을 발사하고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핵·미사일을 ‘반제품’에서 ‘완제품’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상품으로 말하면 최고의 가치가 부여되었다. 북한은 그 ‘완제품’의 ‘억지력’을 강조하지만 사실 북핵은 ‘억지력’보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명예교수가 말한 ‘외교력’의 가치가 훨씬 높다. 한반도 특성상 이 ‘외교력’은 북한의 모든 것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마력’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은 대내적으로 감히 세계 최강의 미국과 싸우는 ‘전설적 영웅’으로 부각되어 그 통치의 정당성과 권위를 부여받았다. 핵·미사일의 대내 기능이 완수된 것이다. 북한 경제는 국제사회의 가혹한 제재 와중에도 상승세를 탔다. 김정일 시대의 비정상화가 정상화로 많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우리가 상대하는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완연히 다른 북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북한은 김정일 시대의 잣대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확실한 것은 북한이 결코 국제사회의 제재에 의해 우왕좌왕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의 로드맵에 따라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지난해의 ‘미친 듯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새해의 대화 공세도 모두 그 로드맵에서 생성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 로드맵은 바로 ‘완제품’으로서의 핵·미사일로 미국과 포괄적인 빅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에 경천동지의 변화를 가져올 역사적 업적을 쌓게 될 것이다.

결국 평창에서 손을 잡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로드맵과 김정은 위원장의 로드맵이었다. 남북의 화해는 바로 ‘천시’와 ‘지리’를 초월하는 ‘인화’(人和)다. 평창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김여정 특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 어린 환대였다. 집권 이래 국제사회에서 압박만 받고 대등한 대우를 받아보지 못한 김정은 위원장에게 그것은 신뢰 그 자체였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로드맵이 예상대로라면 ‘인화’의 다음 프로세스는 으레 북-중 관계 개선이 돼야 한다. 그동안 북한은 핵·미사일을 완제품화하기 전까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모란봉악단 회군’ 사건이 있었고, 쑹타오 대외연락부장이 시진핑 총서기의 특사로 방북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한 ‘냉대’가 있었다.

북-중 관계와 북핵은 연동하여 돌아간다. 이제 북-중 관계는 그동안의 응어리를 일거에 풀며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남북 관계, 북-미 관계와 같이 북-중 관계에도 상상 못할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남북 관계, 북-중 관계, 한-중 관계가 ‘지리’의 연동을 이루면, 삼국의 ‘인화’로 북-미 관계에도 긍정적 에너지가 주입될 것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보지 못한 웅비하는 한반도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남북의 천시, 지리, 인화가 만들어낸 지각변동이지만 정작 작금의 남북은 모두 살얼음판에 올라서 있다. 남북 관계는 고비마다 유독 운이 따르지 않았다. 맹자는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하다”고 했다. 결국 신이 내린 한반도의 마지막 기회는 ‘인화’에 달려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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