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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5 20:40 수정 : 2018.04.15 20:43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현재 아베 신조 정권은 발족 이래 최대의 위기에 빠져 있다.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낮아지고 반대가 지지를 크게 웃돌고 있다.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총리와 친근한 인물이 경영하는 학교법인에 정부가 국유지를 가격을 대폭 깎아서 매각했다는 것, 총리와 친한 인물이 경영하는 대학에 수의학부 개설을 인가해준 것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최고 권력자의 위세를 이용해서 권력자의 친구에게 정권이 이익을 제공해 행정의 공평성을 파괴한 것이다. 더욱이 이런 문제는 1년도 더 전에 발각돼 국회에서 야당이 추궁을 했지만, 정부는 실태를 해명하지 않고 문제가 없다고 강변해왔다. 뒤에서는 국유지 매각 절차의 하자를 입증하는 공문서가 조작됐다. 권력의 사유화 위에 증거 은폐라는 죄가 겹쳐 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와 겹쳐 보일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많은 시민들이 분노로 행동에 나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고, 민주정치의 자정 작용이 발휘됐다. 일본의 경우에는 내각 지지율이 저하됐지만, 총리 관저를 10만명의 시민이 포위하는 것과 같은 움직임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긴 역사의 민주정치를 자랑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치우침이 있다. 일본에서 민주주의는 다수결과 동일시되므로 정치 참여는 선거와 동일시되기 쉽다. 국민은 몇 년에 한 번 있는 선거에서 투표하고, 선거 뒤에는 당선된 의원이 다수결로 결정한 정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이해한다. 2차대전 이전 치안유지법(일제가 1925년 제정한 법률로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을 비롯한 일체의 사회운동을 조직하거나 선전하는 자에게 중벌을 가하도록 규정)과 특고경찰(1911년 일제가 만든 사상 단속 경찰 조직으로 특별고등경찰의 약칭. 나중에는 공산주의 운동과 노동운동 단속에 그치지 않고 시민 생활 전반에까지 영향력을 미친 조직)이 한 탄압으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확대되지 못한 역사적 경험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리라. 또한 전후 민주주의 아래에서 데모와 집회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물든 과격한 당파가 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의 공민권 운동(참정권 운동으로,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이 대표적)과 한국의 민주화 경험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대표를 뽑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물론 법률을 정하는 것은 의원 다수결에 따르지만 의회 밖에서는 시민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행동하는 것이 민주주의 구성 요소다. 2015년 안보법제(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안전보장 관련 법률들. 전쟁법이라는 비판과, 전쟁 포기를 규정한 현행 헌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았음)에 반대하는 운동 중에 집회와 데모가 부활했다. 이번 정치 부패에 대한 항의로 그와 같은 시민 정치 참여가 넓어질까 주목된다.

이 마당에 이르러서도 아베 정권을 옹호하는 평론가도 있다. 그들은 한반도 정세가 격동하는 중인데 언제까지나 스캔들에 대해 추궁할 상황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문제 바꿔치기다. 의혹이 발견됐을 당시 즉시 정보를 공개했다면 문제는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아베 정권이 불덩어리가 된 건 자업자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은 없던 것처럼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베 정권의 외교가 막다른 길에 몰려 있는 데 반영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에는 압력을 가해야만 할 뿐이라든지, 미·일은 100% 하나라는 자기 확신으로 무장한 아베 정권은 자승자박에 빠져 있다. 도그마의 붕괴는 위신 실추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아베 외교는 세계에서 뒤처져 있다.

지도자의 질을 높이는 게 일본의 급선무다. 이를 위해서는 의회에 맡겨두지만 말고 시민이 여러 형태로 의사 표시를 하며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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