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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22 18:17 수정 : 2018.04.22 19:04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6년 동안 북한의 ‘지정학적 요충 이론’을 유달리 많이 강조해왔다. 그에 따라 북한은 자기들이 지정학적으로 대국들을 다스릴 수 있는 유리한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고 했다. 북한이 말하는 ‘전략 국가’의 지위는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6년 북한의 지정학 이론은 북한의 “전략적 지위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대세의 향방과 세계의 힘의 구도가 순식간에 달라져야 하는 현대 정치사의 대격변기가 도래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북한의 표현대로라면 대국을 쥐락펴락하는 그 힘은 결국 김정은이 구비한 지정학적 통찰력과 핵무력에서 나온 것이다. 북한은 바로 이 지정학적 지위와 핵무력이 있기에 자기들에게도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한 것이다.

새해 들어 북한은 바로 이 힘의 원천인 핵 포기를 사실상 선언하면서 불과 몇달 사이에 현기증이 날 만큼의 격동을 한반도에 몰아오고 있다. 며칠 전에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지하고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고 결정했다. 또 병진노선의 종식을 선언하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내놓았다.

임철웅 북한 내각부총리는 “세계적인 전략국가로 급부상시킨 불가항력적 힘을 최대로 분출시킨다면 경제강국 건설의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했다. 북한에 ‘전략국가’의 지위를 부여한 ‘불가항력적 힘’의 원천은 핵무기인데 이를 포기한다? 과연 핵이 없는 북한은 ‘지정학적 행운’을 계속 누리며 ‘전략국가’로 남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얻어낸 핵을 북한은 정녕 포기할 수 있는 것일까? 김정은 위원장이 파격적 행보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와중에도 전략적 전환이냐 아니면 전술적 꼼수냐 하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파생한 것이다.

북한이 이제껏 강조한 ‘지정학적 지위’는 지정학적 대결에서 이뤄진 것이고, 그 지정학적 대결의 극치가 바로 핵무력의 완성이었다. 결국 북한은 핵무력에 힘입어 ‘전략국가’로 발돋움한 셈이다. 하지만 북한은 지정학적 대결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핵무력은 얻었지만 다른 것은 모두 잃었다. ‘지정학적 지위’는 부각됐지만, 그럴수록 강대국들의 전략적 접근과 각축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그 소용돌이 속에 마침내 가난에 허덕이는 ‘강성국가’밖에 되지 못할 것이었다. 물론 물샐틈없는 제재가 있다 해도 북한은 10년, 20년 ‘자력’과 ‘국산품’으로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시대는 그렇게 버텼다. 그렇지만 다시 그렇게 버티면 끝끝내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것이다.

결국 북한은 지정학적 접근에서 탈피하여 지경학적 접근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래야 김정은이 말하는 “인민의 만복이 꽃펴나는 사회주의 경제강국”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대로 병진노선에서 경제노선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지정학적 접근에서 지경학적 접근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그것은 지정학적 대결의 산물인 핵·미사일과 지경학적 발전을 맞바꿈하는 획기적 선언일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지경학적 지위를 논할 때가 된 것 같다. 북한은 사실상 동북아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지경학 지위에 있다. 북한이 움직이면 중국의 동북, 러시아의 극동, 한국, 일본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지각변동이 연동되면 동북아는 명실공히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될 것이다.

이러한 지경학적 위상은 북핵보다 훨씬 큰 위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안전과 체제를 수호하는 힘도 실려 있다. 지정학적 접근은 대국들과의 전략이익이 얽히고설켜 대결 구도가 될 수밖에 없었던 반면, 지경학적 접근은 경제적 이익으로 상호 의존 관계를 이루며 끈끈한 운명 공동체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북한발 지경학적 태풍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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