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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20 22:40 수정 : 2018.05.20 22:49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올해 초부터 북한은 어지러움을 느낄 만큼 현란한 변화를 일으켜왔다. 그 ‘전광석화’의 변화를 읽는 세간의 시각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큰 국면, 장기성, 거시적인 것이 내포된 전략 변화로 보는 시각이고, 또 하나는 국부적, 임시성, 미세적인 것을 뜻하는 전술 변화로 보는 시각이다. 전자는 북한이 전략적 접근으로 핵을 포기할 것으로 보지만, 후자는 북한이 위장 평화전술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여긴다. 나머지 하나의 시각은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 해도 그것은 전략적 접근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 어쩔 수 없이 백기를 든 것이라는 이른바 ‘북한 투항론’이다.

일사천리로 순항할 것만 같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에 다시 급제동이 걸리면서 북한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혼란을 겪고 있다. 북한의 변화와 관련해 그 허와 실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북한 변화의 허와 실을 통찰하려면,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추구하는 변화의 원동력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북한 체제의 변화는 바로 김 위원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집권하며 넘겨받은 북한은 사실상 먹는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가난한 나라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의 참혹상은 전세계에 북한을 최빈국으로 각인시켰다. 세계 1·2·3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중국·일본, 11·12위의 경제체인 한국·러시아와 이웃한 나라가 맞는지 의심이 들 만큼 ‘황량한 고도(孤島)’였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가장 먼저 찌들 대로 찌든 가난에서 나라와 백성을 ‘탈출’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가난에 대한 ‘증오’와 굶는 백성에 대한 사명감이 변화의 동력이 돼야 한다.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라고 했다. 세종대왕이 현명했던 것은 바로 백성을 하늘로 섬기는 마음이 그의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후 첫 육성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했다. 2014년 5·30 연설에서는 “모든 일꾼들이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경제·문화·인민생활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자신을 깊이 반성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했다. 변화의 원동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북한 변화의 원동력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가짐에서 읽어야 한다. 가난에 대한 ‘증오’가 클수록,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클수록, 변화의 폭도 커진다. 공자는 ‘민유방본 본고방녕’(民惟邦本 本固邦寧), 곧 ‘나라의 근본은 오직 백성이고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개혁·개방 의지와 북핵 포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정비례한다.

변화의 원동력이 있다면 이제 험난한 고행을 거쳐야 한다. 북핵에는 여러 대국들의 전략적 이익이 집약돼 있다. 그 이익 관계들이 얽히고설켜 진행되는 힘겨루기의 결과물로 하나의 합력(合力)을 이루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엥겔스가 ‘합력론’에서 말한 것처럼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결과”일 수도 있다. 결국 전략이건 전술이건 북한의 변화는 고정불변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살얼음판 걷듯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을 투항해 핵을 포기하는 ‘패전국’처럼 다루고 강압적으로 몰아쳤다가는, 결국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로 동북아를 다시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작금의 동북아는 전대미문의 큰 ‘변국’(變局)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북한의 변화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북한 변화의 원동력에 유독 눈길을 돌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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