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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6.17 20:44 수정 : 2018.06.18 10:21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세기의 회담’으로 불린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건만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회담 성과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다. 애초 논쟁은 미국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시브이아이디(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문구가 공동성명에서 빠지면서 불거졌다. 북한과 중국을 최대의 승자로 보고 미국은 반승반패, 한국과 일본은 패자로 보는 시각도 많다. 과연 그럴까?

시브이아이디는 북한이 줄기차게 반대해온 것이기도 하다. ‘V’(검증 가능)를 임의 사찰 형식으로 본다면 북한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I’(불가역)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말한 것처럼 북한 과학자들을 외국으로 이주시키는 등의 극단적 조처라 한다면 역시 북한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자칫 북한이 ‘패전국’으로 취급되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공동선언문에 시브이아이디가 포함됐다 해도, 그 회담이 성공이었다고 하기는커녕 그것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북한이 진짜 핵을 깡그리 포기했다고 해도 믿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결국 신뢰의 문제이다.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합의여도 화려한 문구에 그칠 수 있다. 9·19 공동성명이 그랬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머리발언에서 “발목을 잡는 과거”, “눈과 귀를 가리기도 한 그릇된 편견과 관행”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김 위원장은 주민들을 사랑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말은 과거를 부정하는 동시에, 집권 후 순탄치 않았음이 분명한 행적을 보여준 면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간 동력은, 바로 트럼프가 말한 주민들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나라와 주민들을 가난에서 탈출시키려는 김 위원장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끝나자마자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지를 선포했다. 비록 앞에 조건이 붙긴 했지만 하나의 ‘문화’로 견고하게 자리잡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지하는 것은 가히 획기적인 일이다. 트럼프의 의지가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 셈이다. 거기엔 김 위원장의 ‘마음’을 읽은 트럼프 대통령의 믿음이 묻어 있다.

일각에서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두 정상이 보여준 낙관적 태도에서 공동성명 밖의 이면합의를 점친다. 그러나 이면합의가 있다 해도 신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은 ‘신뢰’이다. 신뢰가 없으면 디테일에서 계속 악마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완전한 비핵화’와 ‘안전 보장’ 같은 큰 약속은 더더욱 주고받을 수 없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자기 사이에 신뢰가 생겼다고 했고, 김정은은 그에 대한 화답으로 “이제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미가 새로운 역사를 쓰려 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신뢰란 하루아침에 한번의 회담으로 이뤄질 수 없다. 계속 쌓아가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로 한 방에 해결될 수 없다.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북핵의 큰 기능에 ‘위협과 공갈’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국제사회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뤘다고 선포하면 사실상 북핵의 이 큰 기능은 상실됐다고 해도 무방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국제적인 ‘제도적 장치’로 마무리한다면, 북한이 핵을 감춘다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했다 해도, 북핵의 다른 한 기능인 ‘억지력’은 보는 시각에 따라 상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면서 동북아와 경제블록화를 이루고 ‘전대미문의 번영’을 누려간다면 그 억지력마저도 허무맹랑해질 수밖에 없다.

‘신즉유 불신즉무’(信則有不信則無, 신뢰하면 있고 신뢰하지 않으면 없다)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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