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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5 17:35 수정 : 2018.08.06 09:25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곧 8월15일을 맞이한다. 올해 8월15일엔 특별한 감회를 느낀다. 내년 5월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기 때문에, 현재 일왕 아래에서 맞는 마지막 ‘패전의 날’이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신조 정권이 발족한 뒤 ‘전후 체제로부터 탈각’(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내건 구호)이라는 방향성 아래에서 헌법 개정을 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이에 대항하려는 듯 아키히토 일왕은 ‘천황은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다’는 헌법적 제약 속에서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헌법을 수호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해왔다. 헌법을 지키려는 쪽에선 다음 시대(아키히토 일왕 퇴위 이후의 시대)에 헌법을 둘러싼 분위기가 어떻게 변할지 우려하고 있다.

8월15일에 대해 일본인 대부분은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인정한 날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적확한 이해도 아니다. 이날은 일본이 히로히토 일왕의 이름으로 ‘포츠담 선언’(1945년 7월26일 독일 포츠담에서 미국·영국·중국 등 3개국 정상회담의 결과로 발표된 공동선언.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권고했다)을 수락한다고 세계에 선언한 날이다. 이런 의미를 아베 총리를 비롯한 많은 일본인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일본 민주 정치와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를 맺는 데 여러 결함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일본인은 왜 이날을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 ‘광복절’이라며 축하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등은) 포츠담 선언에서 일본에 군국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 국가로 돌아갈 것과 청일전쟁 이후 제국주의 정책으로 획득한 식민지를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 선언이 발표되고 일본이 이를 수락하기까지 보름 이상의 공백이 있었다. 그사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소련은 일본과 전쟁에 참전했다.

당시 일본 지도자가 즉시 선언을 수락했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전후 세계의 모습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큰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그 정도의 희생을 치르고 일본은 선언을 수락했다. 제국주의 국가의 길과 전쟁을 부정하고, 평화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가 되겠다고 세계에 약속했다. 포츠담 선언을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고 태연하게 말한 아베 총리 등은 이런 책임을 이해하고 있을까.

사실 일왕은 포츠담 선언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상상한다. 패전 때 일본의 지도자들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길 망설였던 것은 국체(천황제)를 지킬 수 있을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전후 체제를 새로 만드는 과정에서 히로히토 일왕에게 전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합국 내에 존재했다. 그러나 점령 주체였던 미국은 이른 단계부터 천황제의 온존을 결단했다. 일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던 국제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포츠담 선언의 취지를 구체화하는 새 헌법을 만들어 일본이 ‘비군사화, 민주화’됐다는 것을 내외에 선언할 필요가 있었다.

히로히토 일왕이 살아 있었던 시대엔 2차대전 이전과 전후의 연속성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현 일왕은 전후 일본이 전전과는 다른 평화 국가가 됐다는 것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일왕의 발언 구석구석에서 그런 결의가 엿보인다.

아베 정권은 여러 의혹과 부패로 국민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대항 세력이 너무나 약해서 아베 정권이 당분간 계속되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헌법 개정의 기운은 시들고 있다. 그러나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억일심’(一億一心) 같은 민족주의적 동조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중에 개헌 발의를 할지 모른다. 헤이세이(아키히토 일왕의 연호) 최후의 8월15일엔 포츠담 선언의 의미를 곱씹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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