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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26 22:11 수정 : 2018.08.26 22:14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도널드 트럼프는 적이 많다. 그는 오래된 적 리스트를 갖고 있다. 직접적으로, 인쇄물로, 트위터로 반복적으로 공격해온 모든 사람들 말이다.

이제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인 적 리스트를 만들었다. 맨 위에는 최근 기밀취급권을 박탈당한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있다. 비슷한 조처를 당할 전직 고위 관리들 명단을 그다음 순위에 올렸다. 마이클 헤이든 전 중앙정보국장,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 현직 법무부 관리 브루스 오어도 포함됐다.

이들이 리스트에 오른 이유는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또는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 정부의 공모 의혹 수사와 관련돼 있다. 아니면 그저 ‘딥 스테이트’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딥 스테이트’라는 것은 정부 안팎의 어둠의 집단이 트럼프의 의제를 저지하려고 협력하고 있다는 우파 진영의 주장이다. 그들은 트럼프를 러시아의 부정행위와 연결짓는 마녀사냥에 동참한다. 언론에 정보를 흘리고, 정부의 기어에 모래를 뿌려 트럼프 의제들을 늦추고 있다.

불행하게도 ‘딥 스테이트’ 얘기는 연방수사국, 중앙정보국, 국가안보국(NSA) 및 다른 권력기관들의 행위를 오랫동안 우려해온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호소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연방수사국 수장으로 엄청난 권력을 축적하고 마틴 루서 킹 같은 인물을 상대로 위장 작전을 수행한 에드거 후버를 지목한다.

그러나 ‘딥 스테이트’는 신화다. 중앙정보국 같은 강력한 기관들은 불법적으로 움직였을 때도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 올리버 노스의 ‘이란-콘트라’ 사건처럼 나쁜 작전도 가끔 있었지만, 이 작전도 대통령의 정책을 방해하기보다는 수행하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워싱턴에서 아주 인기가 없다. 많은 연방정부 직원은 그가 환경, 노동, 교육 등에 관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뒤집은 것에 불만이 매우 많다. 그들은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고, 일부 트럼프의 의제들을 늦추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딥 스테이트’ 음모론으로 단결하지는 못했다.

트럼프의 적 리스트는 법 집행기관과 정보기관 안에서 대통령 반대파의 흔적을 모두 없애려는 노력이다. 그는 목소리 큰 비평가들을 침묵시키는 것에만 관심 있는 게 아니다. 중국 표현을 빌리자면, 트럼프는 닭을 겁주려고 원숭이를 죽이고 있다. 연방수사국, 중앙정보국, 국가안보국, 국가안보회의(NSC) 및 다른 곳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도록 가장 두드러지고 유명한 인물들을 응징하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00만명 넘는 사람의 기밀취급권 박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의 행동은 너무나 익숙하다. 폴란드에서는 우익 포퓰리스트인 ‘법과 정의당’이 정권을 잡고 처음 한 일이 군대의 숙청이었다. 오스트리아 연립정부 파트너인 극우 자유당은 정보기관의 많은 고위 공무원을 해고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가 ‘딥 스테이트’라는 말을 널리 알린 터키에서는 대통령이 군대, 법 집행기관, 정보기관에 대한 철저한 숙청을 명령했다.

물론 일부 국가에서는 강력한 기관이 집권당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한다. 한국에서는 악명 높은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을 때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 문서는 계엄령뿐 아니라 군사 쿠데타까지 암시했다. 쿠데타가 한국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런 시나리오는 몬테네그로, 부르키나파소, 타이, 리비아처럼 반민주 세력의 ‘딥 스테이트’가 강력한 국가에서 더 일상적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폴란드, 오스트리아에서는 ‘딥 스테이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도자가 사람들을 겁줘서 자신의 힘을 강화하려고 하는 편리한 얘기일 뿐이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에게 속아서 투표한 미국인들이 트럼프의 적 리스트와 ‘딥 스테이트’에 관한 거짓말에 다시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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