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교수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은 핵무기가 미국을 끝장내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줄 ‘정의의 보검’이라고 했다. 새해 들어 북한은 바로 그 가치가 하늘을 찌르는 ‘보검’을 쥐고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평화체제 구축을 빅딜 하려 한다. 그리하여 세인들이 주목하는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전세계가 북한을 주목하는 이유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믿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은 여러 차례 정상 간 친서 왕래를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각인시켜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한 금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도 역시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드팀없는 의지와 트럼프 1기 임기 내에 비핵화를 완성하겠다는 시간표를 전해왔다. 그렇지만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변함없는 강한 의지도 점차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 잠식되며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김 위원장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에 대해 특사단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큰 목표에선 합의를 보았는데도 그것을 실현할 로드맵과 시간표는 정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한쪽이 어느 만큼 선의와 아량을 보였으니 상대도 어느 만큼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식이다. 주먹구구가 아닌가. 그러다 보니 6자회담 때와 똑같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의 선후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져 나왔다. 다른 게 있다면 ‘평화협정 체결’이 ‘종전선언’으로, ‘비핵화’가 ‘핵 리스트 신고’로 디테일해진 것뿐이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어서일까.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두 정상은 모두 긍정적 메시지를 강하게 보내건만, 정작 실무진에서 부딪치는 소리는 불협화음이다. 지난 30년의 관성이 여전히 디테일을 좌우한다. 작금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디테일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면 정상들이 나서 길을 틔우는 패턴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의 통 큰 결단이 없으면 그 프로세스는 지극히 험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보여준 비핵화 의지는 가히 파격적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 일각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김 위원장이나 북한의 공식 언론매체가 ‘비핵화’ 언급 자체를 기피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미래 핵은 포기하지만 과거 핵은 숨기려 한다는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자기들이 비핵화를 위한 선의와 아량을 보였기에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화답해야 하며,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도 상응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한다. 그 조처가 무엇인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렇기에 북한이 핵을 철저히 포기한다 해도 그 프로세스 전반에 계속 의혹의 눈초리를 달고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확실한 로드맵을 내놓는다면 상황은 크게 반전을 이룰 것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핵무기를 감추는 비핵화’를 한다고 할 때 그 핵무기가 여전히 ‘만능보검’의 역할을 하게 될까? 핵 본능의 억지력을 잃기에 ‘보검’이 아니라 ‘계륵’이 되지 않을까? 이스라엘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핵에 미련을 갖는다면, 트럼프 행정부 이후의 미국과 문재인 정부 이후의 한국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는 누구도 모른다. 북한은 그 지정학적 특성상 핵을 ‘만능보검’으로 보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난 3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앞으로도 미국이 북핵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면, 북한은 계속 북핵이라는 ‘계륵’을 안고 부대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계별 동시 원칙’은 북한이 내놓은 합리적 프로세스다. 북한이 이 프로세스로 비핵화 전반에 걸친, 제재 해소를 포함한 확실하고 명확한 단계별 딜의 로드맵을 내놓는다면 세간의 의혹은 일거에 해소될 것이다. 북한의 ‘통 큰 결단’이 더 절실한 이유가 아닐까.
칼럼 |
[세계의 창] 북한의 로드맵이 필요하다 / 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지난해까지만 해도 북한은 핵무기가 미국을 끝장내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줄 ‘정의의 보검’이라고 했다. 새해 들어 북한은 바로 그 가치가 하늘을 찌르는 ‘보검’을 쥐고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 및 평화체제 구축을 빅딜 하려 한다. 그리하여 세인들이 주목하는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전세계가 북한을 주목하는 이유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믿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은 여러 차례 정상 간 친서 왕래를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각인시켜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면담한 금번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사단도 역시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드팀없는 의지와 트럼프 1기 임기 내에 비핵화를 완성하겠다는 시간표를 전해왔다. 그렇지만 비핵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 변함없는 강한 의지도 점차 많은 사람들의 우려 속에 잠식되며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김 위원장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에 대해 특사단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큰 목표에선 합의를 보았는데도 그것을 실현할 로드맵과 시간표는 정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한쪽이 어느 만큼 선의와 아량을 보였으니 상대도 어느 만큼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식이다. 주먹구구가 아닌가. 그러다 보니 6자회담 때와 똑같이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의 선후를 둘러싼 논쟁이 불거져 나왔다. 다른 게 있다면 ‘평화협정 체결’이 ‘종전선언’으로, ‘비핵화’가 ‘핵 리스트 신고’로 디테일해진 것뿐이다. 디테일에 악마가 있어서일까.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두 정상은 모두 긍정적 메시지를 강하게 보내건만, 정작 실무진에서 부딪치는 소리는 불협화음이다. 지난 30년의 관성이 여전히 디테일을 좌우한다. 작금의 비핵화 프로세스는 디테일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면 정상들이 나서 길을 틔우는 패턴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의 통 큰 결단이 없으면 그 프로세스는 지극히 험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보여준 비핵화 의지는 가히 파격적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 일각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김 위원장이나 북한의 공식 언론매체가 ‘비핵화’ 언급 자체를 기피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북한이 미래 핵은 포기하지만 과거 핵은 숨기려 한다는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자기들이 비핵화를 위한 선의와 아량을 보였기에 미국이 ‘종전선언’으로 화답해야 하며,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도 상응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한다. 그 조처가 무엇인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렇기에 북한이 핵을 철저히 포기한다 해도 그 프로세스 전반에 계속 의혹의 눈초리를 달고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확실한 로드맵을 내놓는다면 상황은 크게 반전을 이룰 것이다. 만에 하나 북한이 ‘핵무기를 감추는 비핵화’를 한다고 할 때 그 핵무기가 여전히 ‘만능보검’의 역할을 하게 될까? 핵 본능의 억지력을 잃기에 ‘보검’이 아니라 ‘계륵’이 되지 않을까? 이스라엘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핵에 미련을 갖는다면, 트럼프 행정부 이후의 미국과 문재인 정부 이후의 한국이 북한을 어떻게 다룰지는 누구도 모른다. 북한은 그 지정학적 특성상 핵을 ‘만능보검’으로 보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난 30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앞으로도 미국이 북핵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면, 북한은 계속 북핵이라는 ‘계륵’을 안고 부대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계별 동시 원칙’은 북한이 내놓은 합리적 프로세스다. 북한이 이 프로세스로 비핵화 전반에 걸친, 제재 해소를 포함한 확실하고 명확한 단계별 딜의 로드맵을 내놓는다면 세간의 의혹은 일거에 해소될 것이다. 북한의 ‘통 큰 결단’이 더 절실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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