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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4 18:02 수정 : 2018.11.05 09:42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태평양전쟁 중에 일본 공장 등에서 노동을 한 한국인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를 일본에서 부르는 표현)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재판에서 한국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이 일본 국내에서 큰 반발을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 맺은) 한일기본조약 등으로 개인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처리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본 주요 미디어들은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문제는 법률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이 있다. 법률적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일본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이 일본 정부에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국교 정상화 때 한-일 정부가 협상으로 이야기를 끝냈다는 것이 일본의 변명이다.(박정희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부속협정인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에서 일본한테서 5억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받고 양국 간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한국 대법원은 10월30일 판결에서 한-일 청구권·경제협력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개인이 피해 보상을 청구할 권리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일본 외무성의 답변이 국회 의사록에 남아 있다. 또한 일본이 (판결을 내린) 한국 대법원이 아니라 한국 대통령에게 항의한 것은 기묘하다. 사법 독립은 근대국가의 대원칙이며, 대통령은 이 판결을 뒤집을 자격이 없다. 다음은 피고인 신일철주금이 판결을 이행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 초점이 될 것이다.

나는 전시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은 정치적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제를 (신일철주금 외에도) 일본의 많은 기업이 안고 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다른 피해자들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면 소송 건수가 얼마까지 늘어날지 모른다. 그사이 한-일 양국의 감정적 대립이 격화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법적 해결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냉전 구조 아래에서 한국과 일본이 반공체제 강화를 위해 타협을 한 측면이 있다. 당시 한국에서는 시민의 자유와 정치 참여가 제한돼 있었고, 징용 피해자들의 요구가 한국 쪽의 정책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흠이 있다. 그 뒤로 반세기 이상 시간이 흘러 한국 사회에서 인권 의식이 높아지고 피해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한 발언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일본 정부가 한일기본조약을 이유로 개인의 권리 주장을 무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냉혹한 이야기다. 더구나 지금의 아베 신조 정권과 여당에는 태평양전쟁 이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싶어하는 무리가 다수 존재한다. 피해자들이 일본의 사죄가 말뿐이라며 반발하고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보상을 하라고 요구하는 점도 이해가 간다.

2차대전 중에 일어난 강제노동 보상 문제는 독일에도 존재한다. 나치 독일 시대에 독일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사람들이 1990년대 미국에서 독일 기업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건수는 방대했고, 독일 정부는 개별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출자한 ‘기억·책임·미래재단’을 만들어 재단에서 170만명의 피해자에게 총액 44억유로(약 5조6천억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지급했다.

법적 분쟁으로 진흙탕을 만들까, 과거의 인권 침해에 대해 성실히 사죄하고 정치적·도의적 해결에 나설까. 일본 정부가 대국적 견지에서 판단해야만 한다. 한반도에서는 남북이 남북 대화, 북-미 대화를 계기로 2차대전, 한국전쟁, 냉전 등 3개의 분쟁을 끝내고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역사적 도전을 하는 중이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의 청산을 끝내기 위해서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법률론이 아니라 정치적 구상과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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