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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27 18:00 수정 : 2019.01.28 13:24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일본에서는 임금에 관한 ‘매월 근로통계조사’ 부정이 지금 큰 정치문제가 됐다. 대규모 회사인 경우에는 전수조사를 해야 하는데, 후생노동성 담당자가 샘플조사를 해왔다. 임금 통계가 부정확한 상태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실업보험급여 등이 원래 지급돼야 할 액수보다 적게 지급됐고, 일본 정부가 내년 예산을 재편성하는 이례적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해에는 아베 신조 총리와 가까운 인물이 경영하는 학교법인에 정부가 국유지를 부당하게 싼값에 매각한 사건과 관련해 재무성이 공문서를 조작한 것이 밝혀졌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재무성 간부가 국회에서 허위 답변을 한 것도 밝혀졌다. 일본의 행정은 허위와 날조를 용인했다는 점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해 있다.

그리스도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간 것도 인구조사 때문이었다.(<신약성서> ‘누가복음’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로마제국의 인구조사를 받기 위해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갔고,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예수를 낳았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마리아와 요셉이 원래 베들레헴에 거주했다고 적혀 있다.) 즉, 정확한 통계조사는 민주주의를 따지기 이전에 국가의 토대에 해당한다.

경제 분야 통계가 부정확한 게 아니냐는 의심은 지난해 11월 일본은행이 내각부에 국내총생산(GDP) 원데이터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면서부터 소문이 떠돌았다.(내각부가 발표한 국내총생산은 여러 가지 데이터를 합성해서 만드는 2차 통계다. 일본은행은 1차 통계자료부터 일본은행이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아베 정권이 장기화하면서 고급 관료가 자신들의 영달과 보신을 위해서 정권 중추부의 비위를 맞추게 됐다는 비판은 국유지 부정 매각이 밝혀졌을 무렵부터 반복됐다. 2018년 1월부터 임금 상승률이 전년도까지의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 상승한 점도 통계조작의 결과가 아니냐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고 호소하기 위해서 통계자료를 자의적으로 고쳤다는 의혹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이 정도로 일본은 근대국가의 실질을 잃어가고 있다. 안으로 부패한 정부가 외부에 대해서는 극히 활동적이다. 국내 정책에서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정부일수록 외부를 향해서는 국민적 내셔널리즘 감정을 선동하는 행동을 취한다. 자위대 항공기에 대한 한국 해군 함정의 레이더 조사(쏴서 비춤) 관련 사건은 총리 관저가 적극적으로 정치문제화했다. 지난해 말에는 일본이 국제포경위원회(IWC) 탈퇴를 선언했다. 이런 판단이 일본의 국익을 늘린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연한 자세를 국내를 향해 과시하면 정부 지지도는 높아진다. 1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약간 올랐다. 근거 없는 우월감과 이해관계가 다른 나라를 비하하는 자세가 만연하는 현상은 나라 전체가 전쟁의 길로 굴러떨어진 1930년대와 닮아 있다. 나는 20세기 전반에 활약한 소설가 나가이 가후의 일기를 현대사 사료로 애독하고 있는데,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세태에 대한 나가이의 기술이 지금과 겹친다.

아베 총리는 1월22일 러시아를 방문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북방영토’(일본이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인 쿠나시르·이투루프·시코탄·하보마이를 일컫는 명칭. 이 명칭에는 쿠릴열도 남단 4개 섬이 일본 영토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협의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양국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북방영토’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대화를 계속한다는 것 말고는 어떤 결론도 성과도 없는 정상회담이었다. 중국과 한국을 상대로 한 영토분쟁에 대해서는 강경한 주장을 하면서도 러시아를 상대로는 주권을 포기한다면 더는 외교라고 말할 수도 없다. 아베 총리의 ‘하는 척만 하는’ 외교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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