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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24 18:28 수정 : 2019.02.25 13:44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세계 경제는 취약한 상태다. 기후변화는 인류의 운명을 위협한다. 조류인플루엔자(AI)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같은 전염병은 수억명을 죽일 수 있다. 이것들은 단지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라 국제 비상사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문제들을 다루기보다는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으려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10여년래 최저 수준인 불법 이민을 막겠다며 그렇게 했다. 헤로인과 코카인 같은 위험한 마약의 대다수는 불법 월경자를 통해 유입되기보다는 통관항에서 적발되는데도 마약을 막겠다며 그렇게 한 것이다.

트럼프는 정부 재원을 배분할 헌법적 권한을 가진 입법부를 회피하려고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의회가 자신의 명령을 따르도록 강제하려고 지난해 12월 중앙정부의 일부를 셧다운했다. 정부를 다시 열기로 합의한 뒤에도 트럼프는 장벽 프로젝트 비용의 일부를 얻으려고 의회와 싸웠고, 또 졌다.

이제 트럼프는 장벽 예산을 국방비에서 가져오려 한다. 공화당은 늘 헌법 수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대통령이 선을 넘는 것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번에 상원 원내대표 미치 매코널은 비상사태를 지지하고, 동료들이 이를 따르도록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다.

트럼프는 호감도 조사에서 40%대에 든 적이 거의 없다. 장벽 문제로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은 특히나 인기가 없다. 1월 중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0%가 비상사태 선언에 반대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폭스 뉴스>의 최근 조사에서도 56%가 반대하고, 찬성은 38%에 그쳤다.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움직임을 제대로 경계하고 있다.

1990년대에 대통령은 의회의 예산안 전체를 승인 또는 거부하는 게 아니라 특정 항목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빌 클린턴은 이를 82번 썼다. 그러나 1998년 대법원은 항목별 거부권은 의회의 예산 결정 특권에 대한 침해이므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정부 지출 법안에 서명하면서 의회가 이 실패한 정책 옵션을 부활시켜 항목별 거부권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의 위헌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제 트럼프는 비상사태 선언으로 더욱 강력하고 그만큼 위헌적인 권위를 차지하려 한다. 그는 특정 항목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 예산을 스스로 재배정하고 있다.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반격에 나섰다.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은 비상사태 철회를 위한 조처에 들어갈 것이다. 캘리포니아와 뉴멕시코 등 여러 주들은 비상사태 선언을 취소하도록 트럼프를 법정으로 불러세우려 하고 있다.

위협은 매우 현실적이다. 트럼프가 의회의 권한을 빼앗는다면 그는 자신의 행정 권한을 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할 것이다. 납세자의 돈을 재배정하기 위해 마음대로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금 신고 공개를 거부하고 파산 신고를 대여섯번 한 사람이 미국 예산 규모의 돈을 건드리게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트럼프가 명령을 통해 통치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훨씬 심각한 문제다. 이는 1920년대 이탈리아와 1930년대 독일의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를 파시스트 국가로 변환시키는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권력 장악에 의도하지 않은 두 가지 긍정적 결과가 있다. 첫째, 그는 거침없이 부풀려진 국방예산을 국내 문제 해결에 전용하려 한다. 앞으로 미국이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자 한다면 국방비에서 돈을 빼내야 할 것이다.

둘째, 트럼프는 무심결에 후임 대통령이 이 나라와 세계가 마주한 진짜 비상사태와 싸울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민주당의 셸던 화이트하우스 상원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선례가 되면, 다음번 민주당 대통령이 대규모 총기사고나 기후변화처럼 훨씬 더 많은 생명의 손실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비상사태를 다룰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자신은 존재 자체를 믿지도 않는 기후변화 같은 것에 대해 트럼프가 미국 정치 시스템과 미국인들로 하여금 대비하게 해준다니 참으로 큰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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