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14 17:52
수정 : 2019.04.1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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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1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건물에서 브렉시트 시한을 연장한 유럽연합 정상회의 합의를 수용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단상을 떠나고 있다. 브뤼셀/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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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직의 마지막 국면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테리사 메이 총리가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질서 있는’ 결별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메이는 2016년 6월 유럽연합 이탈을 결정한 국민투표 결과에 데이비드 캐머런이 사퇴하자 갑작스럽게 총리가 돼 격동의 시간을 감내해왔다. 메이는 필요하다면 유럽연합과 결별 조건을 합의하지 않고도 국민투표 결과를 실행하겠다는 결의를 시사해왔다.
또 그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깊은 신념을 강조해왔다. 2016년 7월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한 첫 연설에서 재임 기간에 해결하겠다는 극심한 불평등 문제를 몇가지로 제시했다. 빈곤 가정 출신들의 짧은 기대수명, 형사사법 시스템의 흑인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 정신건강 문제가 있는 이들에 대한 부족한 지원이 그 내용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근근이 살아가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돕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일자리가 불안하고, 자녀 교육의 질이 낮고, 나라의 자원과 기회에서 너무 적은 몫을 차지하는 이들이 겪는 일상적 부정의를 바로잡는 게 자기의 의무라고 믿었다.
메이는 보수당 의석을 늘려 의회에서 큰 장애를 겪지 않고 브렉시트를 실행하기 위해 2017년 6월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보수당은 불리한 조건에 놓인 더 많은 시민들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고, 세대 간 불공정 문제를 개선하고, 오래된 불평등 문제를 교정하겠다고 공약했다.
‘고도의 능력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교육 기회를 향상시키겠다고 했다. 훌륭한 공립학교를 늘리고, 정부가 지원하는 무상 교육 학교도 늘리고, 모든 주요 도시에 수학 특성화학교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이를 이루겠다고 했다. 주택 사다리에 오르려는 청년들에게 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 집을 더 지어 세대 간 평등을 촉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잘사는 중년층과 노년층은 어느 정도 희생이 필요하다. 매해 연금을 2.5% 인상하는 정책은 폐기하겠다고 했고, 난방비는 보편적 지원이 아니라 연금을 적게 받는 사람들한테만 주는 쪽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재정적으로 안정적인 나이 많은 세대는 사회복지 비용 상승에 ‘공정한’ 기여를 해야 한다. 또 성별, 인종, 장애를 이유로 한 ‘고착된 부정의’를 바로잡는 주요 개혁안들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인종 간 부정의 문제에 관해서는 집주인과 기업의 차별적 관행을 방지하기 위한 평등 지향적 법률의 강력한 집행을 약속했다. 경찰의 검문검색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형사사법에서 흑인, 아시아인, 그밖의 소수 인종에 대한 불균형한 공권력 사용을 줄이겠다고 했다.
메이의 조기 총선 결정은 대단한 역풍을 불렀다. 보수당은 42.4%의 득표율로 스코틀랜드에서 늘린 12석을 포함해 318석을 얻어 다수당 지위를 지켰지만, 예상을 뛰어넘은 노동당의 부활 때문에 캐머런이 물려준 과반 의석을 지키지 못했다. 메이는 북아일랜드의 민주연합당과 연립정부 구성 협약을 맺어야 했다.
메이는 허약한 정부로는 공약을 추진할 수 없었다. 대신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약속대로 2019년 3월까지 브렉시트를 실행하는 데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메이 내각과 보수당 내부의 유럽연합 이탈파와 잔류파의 심각한 분열 탓에 엄청나게 힘든 과제가 됐다.
유럽연합에서 탈퇴 합의 및 미래에 관한 정치적 선언을 확보한 메이는 의회에서 이 안을 통과시키려고 분투했다. 보수당 동료 의원들에게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3차 투표에서 가결을 약속한다면 자신의 사퇴 날짜를 제시하겠다고 했지만 하원에서 충분한 지지를 모으지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메이는 브렉시트 수정안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를 타진하려고 야당 지도자 제러미 코빈과 협상에 들어갔다. 또 의원들을 설득할 시간을 벌기 위해 유럽연합에 브렉시트 시한 연장을 요청했다. 이런 작업이 성공적일지라도 훗날 정치사학자들의 메이에 대한 판단은 부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강한 의무감과 국가 이익을 증진하려는 의지에도 브렉시트 협상에 대한 융통성 없는 접근법, 동료들과의 협조 관계 부족, 과반 의석 상실, 10년 이상의 긴축 정책이 낳은 부정적인 사회·경제적 결과를 제어하지 못한 점은 그가 표방한 ‘선량하고 충실한 보수당원’이 아니라 또 다른 정치적 실패자로 자신을 역사에 기록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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