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5.05 18:19 수정 : 2019.05.06 13:32

자민당의 총재이자 내각총리대신인 아베 신조 . 교도 연합뉴스

지난번 칼럼에서도 썼듯이 일본 국내에서는 아키히토 상왕이 재위한 헤이세이(平成) 30년 동안을 되돌아보는 논의가 정치와 경제에서 사회, 문화, 풍속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진행됐다.

우연이지만 헤이세이는 세계 냉전 구조의 붕괴가 시작된 1989년에 시작했다. 또한 헤이세이가 시작된 직후 일본에서는 거품경제가 붕괴했다. 헤이세이 30년은 하나의 시대라는 존재감을 지닌다. 그러나 그 존재감은 마이너스, 재난, 불운이라고 말할 만한 부정적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다. 거품이 꺼진 뒤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또한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라는 큰 고난을 경험했다. 일본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중국에 뒤져, 일본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라는 자부심도 사라졌다. 헤이세이 말기에는 일본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앞으로도 인구 감소에 제동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일본 국내에서는 이런 현실을 위기라고 심각하게 인식하고 정치의 힘을 사용해서 사회·경제의 난제를 해결하려는 여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달 말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정체와 쇠약에 익숙해진 민의라는 현재 상황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아베 정권에 기대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57%로 ‘기대한다’는 응답(41%)보다 많았다. 반면 정치에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안정’이 60%, ‘변화’가 34%였다. 아베 총리에 대해서 기대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층에서도 정치에 안정을 기대한다는 답변(51%)이 변화를 기대한다는 응답(43%)보다 많았다.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이른바 ‘자민당 일강(一?)’ 상황을 국민은 우려하고 있다. 국회에서 자민당만이 강한 세력을 갖는 상황을 ‘좋지 않다’고 답한 이는 80%로, 자민당 지지층에서도 이에 대해서 ‘좋지 않다’는 답변이 62%를 차지했다. 반면 정권 교체를 앞으로도 하는 편이 좋겠냐고 물어보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가 53%, ‘하는 편이 좋다’는 40%였다.

일본의 현실에 대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만, 동시에 전향적인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깊은 체념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 이 조사에서 보인다. 아베 정권이 발족한 뒤 6년을 넘어서면서 사람들은 싫증이 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생활이 힘들다고 답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권에 대한 기대는 낮지만 정치에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또 자민당 정권이 지속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만 정권 교체를 기대하는 여론은 극히 적다. 일본에서는 2009년 민주당 정권 교체에 대해서 실패였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정착해 있다. 정치를 쇄신하는 것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비관 앞에서 정권 교체의 필요성을 논해왔던 사람으로서 할 말을 잃는다. 일본인들의 체념은 시민이 부패한 정치와 싸워 정권 교체를 쟁취해온 한국과 크게 대조를 이룬다.

인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안온했던 시대보다는 고난이 가득 찼던 시대 쪽이 훨씬 길었다. 그러나 인간은 고난을 극복해서 문명을 구축해왔다. 지금 일본인들의 체념은 일본이 근대의 발전, 성장의 시대를 완전히 졸업하고 긴 정체의 시대에 들어갔다는 뜻이라고도 말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는 냉정한 현실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헤이세이 다음 레이와(令和)라는 연호가 사용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새로운 일왕의 즉위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논의가 요란스럽다. 그러나 그 새로움은 공허하다. 레이와의 일본에 대해서 재생의 희망을 말할 수 없다.

희망은 공상과는 다르다. 헤이세이 시대에 일어났던 정책의 실패를 착실히 응시해서 하나씩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부터 해서 다음 시대를 열어젖히는 수밖에 없다. 무력감 그리고 체념과의 싸움은 당파를 초월해서 모든 정치가의 책임이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계의 창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