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2 17:55
수정 : 2019.05.1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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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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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반도의 극적 변화가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등장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 밑바탕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다르고, 김 위원장도 선대 지도자들과 완연히 다르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거기에 지난 10년의 보수 정권과 다른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한반도는 천시, 지리, 인화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했다고 봤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국은 다시 롤러코스터가 운행되는 분위기다. “천시, 지리, 인화”가 운을 다한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 대한 판단이 흔들리고, 상황은 원상복귀마저 우려스러울 정도로 심각하다.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많은 사람들은 디테일에 있을 ‘악마’를 우려했다. 그렇지만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는 그 우려를 ‘해소’했다. 애초 디테일에 앞서 큰 틀에서 서로의 악연을 털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전혀 실현 불가능한 방법에 대해서만 머리를 굴리고 회담장에 찾아왔고, 문제를 풀어나갈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하노이 회담은 북-미 서로가 준비 안 됐음을 확인한 회담이 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얘기했듯 미국도 북한이 빅딜 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방안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디테일에 악마가 있으면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만, 큰 전략에서 남원북철(수레의 끌채는 남쪽을 향하고 바퀴는 북쪽으로 간다는 뜻)이면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에 북핵을 전략적으로 접근하려 하고, 북한은 과거 핵을 보유하려는 전략이라면 그것이 바로 남원북철인 것이다. 그렇기에 하노이에서 서로 간의 차이를 확인한 것이 성과라고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쌍방 모두 대화의 동력을 잃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꽉 막힌 작금의 정국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한국이 가장 난감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북한은 작금의 난국에서 다시 ‘자력갱생’을 불러오고 있다. 미사일 발사로 미국을 압박한다. 남북관계에서 예의 무시 전략을 펼친다.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으로 과거의 ‘북방 삼각’을 연상하게 만드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또 지난 수십년간의 ‘자력갱생’을 국책으로 한다면 인민들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길이 김 위원장이 말한 “새로운 길”은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미국의 전략이 원하는 길일 수 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가차없이 채찍을 휘두른 미국은 ‘제재 프레임’으로 북한을 끝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북핵을 앞세워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그 프레임이 미국의 전략과 연동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위대한 잠재력을 거론하며 당근을 내밀지만, 북한으로서는 병 주고 약 주기일 수 있다.
북핵의 발단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북한의 생존 전략의 충돌이다. 지금도 그 연장선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한반도의 냉전 구도가 필요하고, 주한미군·한미동맹·주일미군·미일동맹이 필요하다면 북핵 접근은 다분히 전략적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으로 제재 프레임을 만들고, 동북아를 그 속에 가둬놓는 게 중국과 대결하는 미국의 전략에는 이로울 것이다.
큰 틀에서 악마를 만났다면, 이젠 미국과 북한이 북핵 폐기부터 평화체제 구축까지의 로드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하노이 회담과 달리 서로 준비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반도는 지금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초심은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초심이 흔들리면 판이 깨질 수도 있다.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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