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9 18:08
수정 : 2019.05.19 19:02
|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 당수. 버밍엄/AP 연합뉴스
|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1979~90)의 주요 야망 중 하나는 전후 영국에서 꾸준히 전진해온 사회주의를 멈추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평등주의에 기초한 국가의 개입을 영국 경제와 사회가 쇠퇴하는 주요인으로 봤다. 대처는 자신의 경제, 사회, 노조 개혁이 매우 인기가 높아 노동당이 ‘반혁명’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애썼다.
부지런하면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시민들이 자신의 지도에 따라 민간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고 믿은 그는 복지국가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러나 보수적 중산층 유권자들에게 인기있는 의료 서비스나 교육 같은 복지국가의 영역을 서둘러 민영화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노동계급 유권자들의 인심을 사려고 공공임대주택 임차인이 할인 가격에 집을 살 수 있도록 한 ‘살 권리’ 정책도 자신의 핵심적 중산층 지지자들의 반발을 사지는 않을 것이라는 조언을 들은 뒤에 승인했다.
기업 활동, 자유시장, 복지 개혁에 대한 긍정적 접근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토니 블레어(1997~2007)와 고든 브라운(2007~2010)의 신노동당 정부는 민주적이고 사회주의적인 경제·사회 정책을 끝장내겠다는 대처의 희망이 성취됐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민간 부문이 아닌 국가가 질 높은 사회 서비스의 주요 공급자가 돼야 한다는 관점을 대중이 다시 갖게 됐다는 징후들이 있다. 2015년 노동당이 좌파 제러미 코빈을 지도자로 선출한 것은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기초하는 대안적 정책 어젠다의 가능성을 열었다. 노동당은 2017년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해’라는 이름을 내건 총선 공약을 통해, 가차 없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의 결과인 서비스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철도 재국유화를 약속했다. 노동당은 질 좋은 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당국의 권한을 회복하고 민간 영역의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평등주의적이면서 국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공공연한 공약 탓에 노동당이 대패하리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노동당이 도시와 교외에 사는 젊은 유권자들을 파고드는 상황에서 보수당은 변화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잘못 판단한 것 같다. 노동당이 31석을 늘리고 2004년 이래 가장 높은 41%의 득표율을 올린 가운데, 보수당은 정권을 지키기는 했어도 과반 의석을 상실했다. 민영화된 공공 서비스의 실패라는 분명한 증거는 국가가 복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노동당의 낙관적 메시지가 왜 다시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는지를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예를 들어, 형사사법 분야에서는 잉글랜드의 보호관찰 제도가 큰 문제다. 위험도가 낮은 범법자들에 대한 감독을 민간업체 8곳에 맡겨 장기적으로 보호관찰 비용을 줄이겠다는 시도는 큰 비판을 받았다.
민간업체들의 재택간호 사업에도 우려가 제기돼왔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번창하겠지만, 가난하고 지방정부가 돈을 대야 하고 조금밖에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살아남을지 의문이다. 인구 구조 변화로 재택간호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국민 보건 서비스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유니버설 크레디트처럼 이데올로기적 배경으로 도처에서 이뤄진 복지 개혁도 부정적 효과를 냈다. 부족한 재원과 함께 복잡한 조건과 규정은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음식 기부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노동당은 집권한다면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급진적 입장을 밝혔다.
노동당이 보수적 유권자들한테 역효과가 날까봐 급진적 사회 정책 마련을 주저한다는 논란도 있었다. 그래서 정권을 잡으면 급진적 공약을 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더 왼쪽으로 간 노동당은 정권을 잡으면 더 급진적 어젠다를 추구할 수 있어 보인다. 보수당 정부가 장기간 긴축을 추구하는 바람에 생활 수준은 침체되고 공공 서비스는 악화한 가운데, 복지국가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표방하는 정당이 공중의 상상력을 잡게 될 가능성이 있다.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