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이 그 혼자만의 병리적 상태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푸틴은 그저 신세계질서의 새로운 규범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현재 부상하고 있는 신세계질서의 슬픈 풍경을 목격했다. 푸틴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반갑게 손을 맞잡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의 다음 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백악관 방문을 제안하며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오랜 유럽의 이성을 대표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회의 기간 내내 소외되고 무시되었던 것이다. 이 신세계질서는 터무니없이 관용적인 질서다. 예를 들면, 신세계질서에서는 특정 국가의 여성들이 심각한 억압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 국가에 여성 인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국주의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푸틴은 오사카 정상회의 전날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신세계질서의 정신을 잘 요약해서 들려준다. 기존 지배계급과는 다른 지도자들, 이를테면 트럼프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 지도자들 역시 푸틴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자유주의는 이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메르켈 총리는 시리아 난민 100만명을 받아들이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이민 정책을 통해 멕시코 국경으로 이민자와 마약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다. 자유주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유주의 아래에서는 이민자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고, 강간을 일삼아도 그들을 처벌할 수 없다. 이민자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모든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이제 시효를 다했다. 자유주의는 이제 대다수 사람의 이익을 거스른다.” 이어 푸틴은 조국을 배반한 이들에 대해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반역은 가장 중대한 범죄다. 조국을 배반하는 이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푸틴이 에드워드 스노든과 줄리언 어산지를 도왔던 이유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지 그들을 지지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반역이 중대한 범죄라는 푸틴과 같은 이들의 입장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 푸틴의 주장과 달리 자신이 속한 국가를 배반하는 일은 때에 따라서 윤리에 가장 충실한 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윤리적 반역을 실천한 대표적인 이들이 어산지, 첼시 매닝, 스노든이다. 오늘날 우리는 환경 문제, 디지털 통제 문제, 이주 문제라는 묵시록적인 위협을 겪고 있다. 지구라는 우주선에 함께 타고 있는 운명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가장 시급한 임무가 문명 그 자체를 문명화하는 것, 그리고 모든 인간 공동체 사이의 보편적 연대와 협력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종교적, 민족적 갈등을 이유로 하는 수많은 영웅주의적 폭력들, 특정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시도들 때문에 이런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국의 대의를 배반할 수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놀이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국가의 성원들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메리카 라스트’ ‘차이나 라스트’ ‘러시아 라스트’처럼 자국의 이익을 우선순위의 마지막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삶을 위협하는 건강하지 않은 이상상태를 병리적 상태라고 부른다면, ‘× 퍼스트’ 따위로 표현되는 각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심각한 병리적 상태일 것이다. 번역 김박수연
칼럼 |
[세계의 창] 자국우선주의에 반기를 들 때다 /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유주의에 대한 공격이 그 혼자만의 병리적 상태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푸틴은 그저 신세계질서의 새로운 규범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현재 부상하고 있는 신세계질서의 슬픈 풍경을 목격했다. 푸틴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반갑게 손을 맞잡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상회의 다음 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백악관 방문을 제안하며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동안, 오랜 유럽의 이성을 대표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회의 기간 내내 소외되고 무시되었던 것이다. 이 신세계질서는 터무니없이 관용적인 질서다. 예를 들면, 신세계질서에서는 특정 국가의 여성들이 심각한 억압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 국가에 여성 인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제국주의적이고 유럽 중심적인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푸틴은 오사카 정상회의 전날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런 신세계질서의 정신을 잘 요약해서 들려준다. 기존 지배계급과는 다른 지도자들, 이를테면 트럼프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영국 지도자들 역시 푸틴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달리 자유주의는 이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메르켈 총리는 시리아 난민 100만명을 받아들이는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이민 정책을 통해 멕시코 국경으로 이민자와 마약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다. 자유주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자유주의 아래에서는 이민자가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치고, 강간을 일삼아도 그들을 처벌할 수 없다. 이민자의 인권도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모든 범죄자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자유주의는 이제 시효를 다했다. 자유주의는 이제 대다수 사람의 이익을 거스른다.” 이어 푸틴은 조국을 배반한 이들에 대해 어떤 관용도 베풀지 않겠다고 단언한다. “반역은 가장 중대한 범죄다. 조국을 배반하는 이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푸틴이 에드워드 스노든과 줄리언 어산지를 도왔던 이유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지 그들을 지지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반역이 중대한 범죄라는 푸틴과 같은 이들의 입장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 푸틴의 주장과 달리 자신이 속한 국가를 배반하는 일은 때에 따라서 윤리에 가장 충실한 행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윤리적 반역을 실천한 대표적인 이들이 어산지, 첼시 매닝, 스노든이다. 오늘날 우리는 환경 문제, 디지털 통제 문제, 이주 문제라는 묵시록적인 위협을 겪고 있다. 지구라는 우주선에 함께 타고 있는 운명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가장 시급한 임무가 문명 그 자체를 문명화하는 것, 그리고 모든 인간 공동체 사이의 보편적 연대와 협력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종교적, 민족적 갈등을 이유로 하는 수많은 영웅주의적 폭력들, 특정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시도들 때문에 이런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반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국의 대의를 배반할 수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놀이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국가의 성원들을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메리카 라스트’ ‘차이나 라스트’ ‘러시아 라스트’처럼 자국의 이익을 우선순위의 마지막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삶을 위협하는 건강하지 않은 이상상태를 병리적 상태라고 부른다면, ‘× 퍼스트’ 따위로 표현되는 각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이야말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심각한 병리적 상태일 것이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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