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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3 17:41 수정 : 2019.10.13 21:37

슬라보이 지제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많은 이가 지금 인류가 처한 생태적 재앙의 위협에 맞서려면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이 ‘존재의 대사슬’에 속한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의 한 종에 불과한 인간이 자원을 무분별하게 착취해 지구를 위험에 빠뜨렸고, 그에 대한 복수로 지구가 우리에게 지구온난화와 같은 문제를 안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들으면 코웃음 치지 않을 수 없다. 위험에 빠진 것은 지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인간에 아무 관심이 없다. 지구는 차라리 인류가 사라지는 편을 원할 것이다. 지금의 생태 위기에서 위협받는 것은 인류의 생존이다.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한다고 여겼던 관점들은 사실 여전히 인간중심주의다. 인류의 이해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자연 지구가 중요하다고 외쳐온 사람들도 결국 어떻게 하면 인류가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태학의 관심 또한 사회정치적 면이 있다. 대자연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지구 환경을 인류 생존에 적합하도록 조정하는 데 관심을 둔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툰베리가 정치인들을 꾸짖으며 과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호소할 때 툰베리의 목표는 정치인을 배제함으로써 운동을 탈정치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려는 것은 새로운 보편적 정치, 즉 모든 이에게 말을 걸면서도 동시에 지금의 생태적 위협을 부정하는 이들과 맞서 싸우는 보편적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생태주의 투쟁은 가장 급진적 형태의 보편적 정치다. 보편적 정치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줄리언 어산지, 에드워드 스노든, 첼시 매닝이 한 일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은 자국의 국가기밀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폭로했다. 국가 편에서 이들의 행위는 반역에 해당하지만, 자국에 대한 충성을 배반하는 것 자체가 보편적 정치의 본질이다.

지난 몇달 동안, 툰베리는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고 천진난만하게 외치는 꼬마의 모습에서 어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능수능란한 활동가 모습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툰베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우리는 툰베리를 보면서 키르케고르의 탁월한 글 ‘천재와 사도의 차이’를 떠올려야 한다. 키르케고르가 말하기를, 자기 안에 있는 내적 본질에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이들이 천재라면 자기 안에 있는 것과 무관하게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는 이들은 사도다. 사도는 진리를 증언하고 전달하는 임무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이들이다. 사도는 신이 진리의 메신저로 선택했을 뿐,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질 때문에 사도가 되지 않는다.

툰베리는 개념을 창조하는 천재가 아니라, 진실을 전달하는 사도다. 툰베리는 우리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하는 대신, 하나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해서 전달한다. “우리 청소년이 거리로 나간 이유는 정치인들에게 우리와 함께 기념사진이나 찍어 달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우리가 하는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거리로 나간 것입니다. 우리 청소년은 지금 어른 여러분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툰베리는 연설에서 자신을 부각하지 않는다. 사도가 말하는 전형적 방식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에게 쏠리면 자기가 전달하려 하는 메시지가 희석되거나 훼손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툰베리가 우리에게 과학의 경고를 들어야 한다고 촉구한다고 해서, 과학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까지 알려주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과학은 우리가 지금 어떤 난관에 빠졌는지 알게 도와줄 뿐이다. 우리는 과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되, 과학이 인류를 구원해줄 중립적 도구가 아님을 인식하고, 과학의 지평을 넘어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툰베리는 과학을 근거로 우리에게 새로운 해방의 기획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번역 김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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