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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0 18:51 수정 : 2019.11.11 02:08

로버트 페이지 ㅣ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최근 영국에서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재임 시절을 술회한 회고록 <기록을 위해서>(For The Record)가 화제다. 회고록이 잘 팔리는 배경에는 영국이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 남을 것인지를 두고 운명적 국민투표에 부친 일을 두고 캐머런이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국민들이 유럽연합 잔류에 찬성할 것으로 확신했던 자신의 실책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회고록에서 다수 영국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국민투표 자체는 옳았다는 확고한 믿음을 밝혔다.

또한 회고록을 보면 캐머런이 재임기간 동안 복지정책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캐머런 정부는 핵심 목표 중 하나로 ‘큰 사회’(Big Society)를 지향했다. 개인과 공동체가 국가 차원의 복지서비스에만 의존하는 대신 지역에서 긴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자발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전국시민서비스’(National Citizen Service: 15~17살 청소년을 위한 자발적 개발 프로그램)는 이런 구상의 한 축이었다. 그는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청소년들이 자발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술회했다. 비록 이 구상에 대한 대중적 공감은 캐머런의 기대에 못 미쳤지만, 보수당이 사회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자발적 행동을 중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캐머런이 국가 차원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 반대하거나 이미 효과가 입증된 재정지출까지 거부한 건 아니다. 그는 특히 중고교에서 학부모·교사에게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더 많이 부여하는 ‘아카데미’와 ‘자유학교’를 확대하는 것을 통해 이룬 교육 분야에서의 성취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캐머런은 ‘항암제 기금’(Cancer Drug Fund)도 치적으로 내세웠다. 이는 국민보건서비스(NHS)로 해결되지 않는, 추가로 비용이 많이 드는 암 환자들에게 특별 재정지원을 하기 위한 것이다.

캐머런은 재임기간 중 실행에 옮겼던 주요한 두가지 복지정책에는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 앤드루 랜슬리 보건장관의 엔에이치에스 개혁은 좀 더 면밀하게 검토됐어야 한다고 인정했다. 이 개혁안은 공공기금의 보건서비스 제공에서 민간의 역할 확대를 두고 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랜슬리 안 대신에 노령인구 보건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돌봄서비스를 개혁하는 일에 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방만한 특별보조금들을 대체하면서 사회보장 혜택을 정비하려고 한 ‘유니버설 크레디트’(Universal Credit)의 도입이 애초 예상보다 어려웠다는 점도 인정했다. 재정 긴축 기조로 공공지출을 삭감하고 있던 때라서 이 제도는 외려 추가적 재원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캐머런 시대의 비평가들은 전임 총리의 정책 판단에 시비를 걸곤 한다. 캐머런의 경제정책으로 임금소득이 오르지 않고 대다수 사회적 취약계층의 생활수준이 후퇴했다는 것이다. 그가 재정 긴축 기조와 관련해 부유층과 빈곤층, 모두가 공평한 부담을 지도록 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분명한 건 취약계층일수록 더 큰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회보장 혜택과 관련한 보조금이 삭감되거나 수급 조건이 더 강화됐고, 너무 넓은 집에 거주하는 것으로 간주된 가구에는 주택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 근로소득이 낮거나 보조금에 의존해 살아가는 가구들은 생필품을 얻으려고, 지역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생겨난 푸드은행을 찾도록 내몰렸다. 캐머런 시대의 혹독함을 보여주는 정책들이었다.

캐머런은 또 공공기금 감축이 핵심 공공서비스를 얼마나 취약하게 만드는지도 간과했다. 엔에이치에스 기금에 대한 실질적 감축은 병원 진료예약 및 치료를 위한 대기 줄을 더 길게 만들었다. 또 많은 학교들이 각종 교육서비스 지원을 학부모와 기부자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로 캐머런이 물러난 뒤 영국 총리들은 잇따라 중도하차했다. 이 회고록의 구매자들이 캐머런의 후임인 테리사 메이와 보리스 존슨의 복지정책에 대한 성찰을 읽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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