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20.01.05 19:26 수정 : 2020.01.06 02:37

로버트 페이지 ㅣ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앞으로 역사가들은 보수당이 압승한 2019년 12월 영국 총선 결과를 ‘믿기 힘든 일’로 회고하게 될 것이다. 윈스턴 처칠, 클레멘트 애틀리, 에드워드 히스,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나아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마거릿 대처까지 포함한 빼어난 정치인을 배출한 나라가 ‘2등 정치인’ 보리스 존슨, 도미닉 라브, 프리티 파텔, 매슈 행콕에게 대체 왜 압도적 지지를 보낸 것일까?

보건장관을 맡고 있는 행콕의 경우,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동원해본다면 영국 건강보험서비스(NHS)가 위기에 내몰린 와중에 태연하게도 오래된 어린이 만화책 시리즈 ‘비노’ 최신판에 빠져 있다. 이 만화는, 자상하지만 건망증 심한 큰할머니가 행콕이 이미 41살이나 된 사실을 까먹은 채 이 만화책을 즐거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보내온 격이다.

두 야당 지도자도 실망스럽기는 똑같다. 2015년에 ‘운 좋게’ 노동당 당수가 된 제러미 코빈은 ‘임시변통 리더’였음이 다시 드러났다. 코빈은 당시 당대표 경선에서 두 명의 베테랑 의원인 마거릿 베킷과 프랭크 필드가 막판 양보하면서 대표로 선출됐다.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의 일부 제스처와 언행이 반유대주의자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최악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코빈은 동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마치 ‘이즐링턴의 피리 부는 사나이’(코빈은 런던 북부 이즐링턴 지역구 출신)인 양 영국의 요란스러운 젊은 유권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지지자로 확보했지만, 그의 정치적 역량에 회의적인 영국 중부·북부의 중장년층 및 노동계급 유권자들을 포용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했다. 정치 경험이 부족한 자유민주당 조 스윈슨 대표의 경우, 스코틀랜드 던바턴셔 지역구에서 낙선했다. 이런 처지를 두고 나온 가장 온건한 평판은 ‘그녀가 수영장 깊은 곳에는 좀체 들어가려 하지 않는 바람에 되레 가장 얕은 가장자리에서 익사할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일련의 야당 패배에서 한 가지 예외는 전투 경험으로 단련된 스코틀랜드국민당 대표 니컬라 스터전이다. 그는, 정당 대표들이 모인 ‘시장’이 형성된다면 다른 정당들이 엄청난 이적료를 주고서라도 영입하려는 1급 정치인이다. 스터전은 우호적인 지지에 힘입어 조만간 영국에서 스코틀랜드 독립을 이끌 것이 확실시된다.

존슨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하나의 국가’(One Nation)를 외쳤다. 보수당을 새로 지지하는 잉글랜드 북쪽 스코틀랜드 노동계급을 설득하는 방책으로 이 개념을 내놓았고 선거 승리에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이 구호는 개념이 모호하다. 본래 보수당 정치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영국 사회의 두 낯선 계급, 즉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상호 교류·이동의 단절을 한탄한 말이었다.

2차대전 이후 보수당 안에서는 두 차례의 잇따른 선거패배 이후 1950년대에 ‘하나의 국가 그룹’이 형성됐다. 당내 좌우파 출신 평의원들을 한데 통합하려는 시도로, 이들은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정책을 펴고 분파주의를 불식하자는 신념을 공유했다. 재임 시절 자산계층 이해를 대변했던 마거릿 대처조차 1993년에 <선데이 타임스> 인터뷰에서, 자신도 이 그룹의 보수당원이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반면에 전후 보수당의 다른 영향력 있는 정치인 이언 매클라우드, 해럴드 맥밀런, 이언 길모어는 ‘하나의 국가’는 확장적 재정·사회서비스 지출과 국가 개입 등 ‘더 큰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여러 ‘하나의 국가’ 전통 중에 과연 존슨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것은 어떤 것인지가 흥미롭다. 급증하는 노숙자 등 새 존슨 내각이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도전들 앞에 사람들은 그가 국가 개입주의 길을 따르길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측 불허의 독불장군이자, 실질적인 행동보다는 허풍을 곧잘 늘어놓는 인물이 될 공산이 크다. 속도감 있게 해법을 내놓지 못하면 그를 향한 인기도 급속히 증발할 것이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계의 창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