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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돈

등록 2014-09-29 18:33


“돈을 돈이라 하는 건 돌고 돌기 때문.” ‘돈’이라는 단어의 뜻에 대해 널리 유포된 오해다. 돈은 금속의 무게를 표시하는 칭량 단위로, 1돈은 3.75g에 해당한다. 귀금속이 교환의 매개물이자 재화의 축장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면서 그 칭량 단위였던 ‘돈’이 화폐 자체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사용된 것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다. 고조선의 팔조법금에도 ‘남을 다치게 한 자는 속죄하기 위해 50만전(錢)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한반도 서북지역에서는 중국 고대의 돈인 명도전, 오수전 등이 출토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도 해동통보, 동국통보 등의 동전을 찍어냈고, 조선 초기에도 조선통보를 발행했다. 하지만 돈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치며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돈이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의 자격을 획득한 것은 상평통보가 주조되면서부터다. 이 돈은 1633년 처음 주조됐는데, 당초에는 거들떠보는 사람이 거의 없어 곧 주조를 중단했다. 그러나 1678년 다시 주조된 뒤로는 얼마 안 가 “세 살배기 아이들도 돈을 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돈을 밝히는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상평통보란 ‘항상 공평하게 통용되는 보물’이란 뜻이다.

그러나 사대부들은 이 돈을 보물로 취급하지 않았다. 전(錢)이라는 글자가 천할 천(賤)과 닮았을뿐더러, 쓸모없는 쇠 부스러기로 남의 쓸모 있는 물건과 바꾸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비로 하여금 대신 지니게 하거나 부득이한 경우에는 젓가락으로 집어 건넸고, 그조차 어려울 때에는 왼손으로 만졌다. ‘소매치기’라는 말이 생긴 것도 사대부들이 왼손으로 만지기 쉽게 돈을 오른쪽 소맷자락에 넣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다시 얼마 되지 않아, 돈은 전지전능한 신격(神格)을 얻었다. 돈의 은총을 바라며 기도하고, 돈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사람들이 세상을 덮었다. 하나가 귀해지면 다른 하나가 천해지는 게 세상 이치다. 돈이 신성(神性)해질수록, 인성(人性)은 초라해졌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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