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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4 18:43 수정 : 2014.11.24 18:43

(문) 일본에 유학 가려면 연락선에서 신분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니 신분증명서는 어떠한 종류입니까? 여행 가는데도 여행권이 있어야 하는지요.(호남 K생)

(답) 다 없어도 행색만 분명하면 관계치 않습니다.(기자)

1926년 10월20일치 한 한글 신문의 문답란에 실린 내용이다.

신분이란 문자 그대로 몸의 분등(分等)으로서 차림새나 행동거지로 표현되는 것이지 증서로 입증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도 16살 이상의 남자는 호패를 만들어 차야 했으나, 제 이름 석자도 못 쓰는 사람이 태반인 상황에서 대체로 양반층의 장신구처럼 사용되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필요할 경우 민적등본을 신분증으로 사용했고, 면허증·학생증·사원증 등이 제한된 용도의 신분증 구실을 했다.

개인 신상에 관한 각종 정보를 손바닥보다 작은 종잇조각에 적어 ‘국민의 자격’을 인증하는 증서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직전부터였다. 1949년 10월 경상북도는 ‘폭도의 준동이 빈번한 도내 치안상황에 비추어’ 도민증을 발행했다. 발행 주체는 소관 경찰서장 및 국민회 지부장이었고 발행 대상은 14살 이상 60살 미만의 민간인 신청자였다. 단 ‘반국가적 사상’을 가진 자는 발급받을 수 없었다.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0월 초에는 서울시도 ‘선량한 시민의 신분을 보장하며 제5열을 철저히 소탕하고자’ 시민증을 발급했다. 시민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적색 반동분자’로 간주되었다. 이후 도민증과 시민증은 국민 자격증이자 통행 권리증으로 통용되었는데, 개중에는 기재 항목에 ‘사상’란을 두어 좌, 우를 표기하도록 한 것도 있었다.

거주지에 관계없이 18살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양식의 주민등록증을 배포한 것은 1968년 1·21사태 이후였다. 개인을 숫자의 조합으로 재구성한 이 ‘국민 자격증’은, 국가가 요구할 경우 언제든 내보여야 하는 필수 지참물로서, 국가의 시선 앞에 한없이 투명하도록 훈육받아온 현대 한국인의 표상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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