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2.02 18:46
수정 : 2015.02.02 18:46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만큼이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흔히 ‘먹다’와 ‘살다’가 서로 붙어 ‘먹고살다’로 쓰인다. 먹는 행위는 삶의 중심에 있으며, 하루의 삶은 식사 시간을 기준으로 분할된다. 가장 원초적인 공동체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로 구성된 식사 공동체이고,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거나 확인하기 위한 대표적 의례는 회식이다.
가족공동체의 균열과 ‘한솥밥’의 위상 저하는 동일한 역사 과정의 산물이다. 1906년, 요리집 명월관은 가깝고 먼 곳을 가리지 않고 음식상을 배달하겠노라고 광고했다. 1909년에는 가나다집이라는 반찬 배달 가게가 문을 열었다. 음식을 만들어 노동현장에 배달하는 일은 먼 옛날부터 농번기 농촌 주부가 해온 일이었으나,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전함에 따라 이윽고 음식점 주방장과 배달부의 몫이 되었다. 현대의 도시민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만든 음식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받아먹는 일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20세기 초부터 세계 어디에서나 음식 배달부는 도시를 유지하는 데에 불가결한 직업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배달 음식에서 느낀 가장 큰 문제는 맛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이 자전거와 철가방이었다. 특히 철가방은 배달 음식에서 비위생적이라는 의심의 그늘을 걷어내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20년대 중반 일본에서 만들어진 철가방은 곧 서울 거리에도 모습을 나타냈다. 이 가방은 꽤 오랫동안 중국 음식점들만 사용했으나, 배달 음식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쟁반 배달’을 고집하던 한식집들도 결국 철가방을 채용했다.
이제 철가방에 담겨 꽤 먼 거리를 이동해 온 음식들은 사무실 탁자뿐 아니라 가정집 식탁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오른다. 그만큼 가족 구성원들을 ‘한 식구’로 만들어야 하는 주부의 부담도 줄었다. 철가방은, 한 음식점 주방에서 만든 ‘한솥밥’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서로 아무런 연대의식도 갖지 못하는 현대인을 만든 일등 공신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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