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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화투

등록 2015-02-23 18:53


돈을 걸고 윷을 던지며 노는 행위가 놀이일까 노름일까? 같은 ‘놀다’의 명사형이지만 국어사전은 ‘놀이’와 ‘노름’을 명확히 구분한다. 승부를 가린다는 점에서나 하는 동안 즐겁다는 점에서나 대체로 도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나 둘 사이에 차이는 없지만, 놀이는 건전한 심신 활동에 속하고 노름은 불건전한 범죄에 속한다. 건전과 불건전을 가르는 기준은 단 하나, 돈이다. 돈이 걸리지 않거나 소액만 걸리면 ‘놀이’이고, 거액이 걸리면 ‘노름’이다. 건전한 것을 불건전한 것으로 바꾸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만 보더라도, 돈의 본성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윷놀이든 활쏘기든 장기든 골프든 돈이 개입되는 정도에 따라 놀이가 되기도 하고 노름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골프채를 스포츠용품으로 분류하고 화투를 도박용품으로 분류하는 것은 근거가 박약한 고정관념의 소산일 뿐이다. 골프채를 도박용품으로 쓸 수도 있고 화투를 놀이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놀이와 노름, game과 gamble 사이에 억지로 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을 쌓으려 한다.

주사위, 골패 같은 ‘도박용구’들은 돈보다 먼저 탄생했다. 이것들은 애초에 신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도구, 즉 무구(巫具)였다. 지금도 화투나 카드는 점치는 도구로 사용된다. 무구 중 일부가 노름을 전문 영역으로 삼은 것은 재신(財神)을 최고신으로 숭배하는 화폐 경제 시대가 열린 뒤였다. 노름은 최고신인 재신이 누구 편에 강림하는가를 점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평통보가 본격 유통된 18세기 이후 각종 노름 도구가 출현했는데, 개항 이후에는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가 노름도구계의 패왕이 되었다. 20세기 벽두에는 화투국이라는 비밀 도박장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인 일반의 강력한 반일 민족주의조차도 화투 앞에서는 힘을 잃었다. 화투가 노름 도구인 동시에 가족끼리 즐기는 민속놀이 도구가 된 지는 무척 오래되었다. 화투에 깃든 ‘돈신’이 최고신인 시대에, 다른 민속놀이들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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