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16 18:49
수정 : 2015.03.16 18:49
‘기름지다’를 한자어로 바꾸면 ‘비옥(肥沃)하다’이다. 동물의 살이나 알곡을 실하고 윤기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기름이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각종 동식물에서 채취한 기름을 요리할 때 쓰거나 몸에 바르거나 불을 밝히는 데 사용해왔다. 땅이 스스로 배출하는 기름도 있었으나, 그런 기름은 사람이 먹을 수 없었고 산지도 아주 적었다.
산업혁명으로 기계의 시대가 열리자 사람이 먹고 바르는 기름보다 기계에 먹이고 발라주는 기름이 더 중요해졌다. 1859년 미국의 에드윈 드레이크가 땅속에서 기름을 퍼 올리는 데에 성공했고, 뒤이어 땅속의 기름을 찾으려는 굴착기가 세계 도처의 지표를 헤집었다. 석유가 조선 땅에 등장한 것은 미국에서 원유 생산이 개시된 지 20년 뒤인 1880년이었다.
“석유는 영미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바다에서 채취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석탄에서 뽑은 것이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돌을 불에 달구어 걸러낸 것이라고 하여 그 말이 한결같지 않지만 그것이 천연자원이란 것은 다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경진년(1880)부터 석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석유가 나온 후로 산과 들에는 기름을 짤 수 있는 열매가 많이 열리지 않았다.”(황현, <매천야록>)
처음 아주까리 동백기름만 몰아냈던 석유는 1930년께부터 도자기와 목기, 심지어 섬유까지 대체하기 시작했다. 석유와 그 부산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1935년에는 원산에 조선석유주식회사가 설립되었는데, 이것이 한반도 최초의 정유회사이다.
현대인이 사용하는 물건 대부분에는 석유에서 유래한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어디에나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든 변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석유는 현대의 신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유한한 석유에 기대어 더 편안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석유가 현대 물질세계의 주요 부분을 구성하는 이상, 석유 고갈이 현대 물질문명을 다른 단계로 이행시킬 것이라는 사실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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