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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23 18:59 수정 : 2015.03.23 18:59

수업 참관 중이던 장학사가 한 학생에게 물었다. “이 지구본이 왜 기울어져 있는지 아니?” 학생은 주뼛거리다 대답했다. “제가 그런 거 아닌데요.” 장학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교사를 쳐다봤다. 교사는 즉시 학생을 위해 변명했다. “저건 사올 때부터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교장을 만난 장학사는 이 사실을 전했다. 교장은 태연히 말했다. “아시다시피 재정이 열악해서요.” 썰렁하지만, 이 이야기가 유머인 줄 알아야 현대인이다.

지구본은 공처럼 생긴 땅덩어리가 23.5도 기운 상태로 회전한다는 사실, 그리고 각 나라의 위치와 크기, 그들 사이의 거리를 즉물적으로 표현하는 물건이다. 인류는 문명을 건설하고도 수천년이 지나서야 겨우 자기 삶의 터전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지구본은 1492년에 제작된 것으로 독일 뉘른베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 지구본과 현대의 지구본 사이에는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이후 수세기에 걸쳐 지구본은 점점 정밀해지는 한편 놓이는 장소도 계속 늘어나 19세기 중반경에는 국민 교육을 위한 핵심 교구(敎具)의 하나가 되었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소현세자가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최초의 지구본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미친 영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지구본이 교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개항 이후 신식 학교들이 설립되면서부터였다. 교탁에는 지구본을 놓고 벽면에는 세계지도와 조선지도를 걸어 놓는 것이 당시 신식 학교 교실의 기본 인테리어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학교 교실이 이 인테리어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본은 필수 교구이기는 하나 효율적이지는 못했다. 현대인은 지구본과 세계 지도를 수천 번씩 본 사람들이지만, 르완다나 코트디부아르를 지구본에서 단박에 짚어 내는 사람은 드물다. 사드 배치가 한반도와 주변국 사이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사람도 무척 많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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