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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30 19:15 수정 : 2015.03.30 19:15

성서에 따르면 처음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인간은 이브다. 그런데 그가 신체 이외의 물체로 가리고자 한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 즉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이 생겼기에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한 것인지, 옷을 입다 보니 피부를 노출시키는 게 수치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류가 섬유 문명을 건설한 이후 수천년간, 옷은 더 많은 섬유로 더 넓은 신체 부위를 가리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대략 한 세기 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얼굴과 손을 제외한 신체 부위를 다 가리지 못하는 옷은 빈천과 야만의 표지였다. 같은 맥락에서 옷은 사람의 개성이 아니라 집체성을 표시하는 도구였다. 옷의 디자인은 일차적으로 부족이나 민족의 표지였으며, 같은 부족이나 민족 내에서는 섬유의 종류와 밀도, 색상, 바느질의 정교함 등이 신분을 표시하는 기호였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섬유 생산의 급증, 신분제 해체,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 총력전 체제 구축, 의복 양식의 세계화 등이 숨 가쁘게 진전되는 와중에, 20세기 초부터는 옷에 집체성보다는 개성을 더 많이 담으려는 태도가 일반화했고, 여성 의복의 경우 팔다리 부위를 옷의 억압에서 해방시키려는 흐름이 큰 줄기를 이뤘다. 치마 길이가 무릎 선을 돌파한 것은 1960년대였는데, 우리나라에는 1967년 가수 윤복희가 첫선을 보였다. 당시 미니스커트는 젊은 남성들의 장발과 더불어 기성 질서와 불화하는 젊은 여성들의 코드였으며, 당대 권력은 경찰로 하여금 30㎝ 자를 들고 다니며 치마 길이를 재도록 하여, ‘신체의 자유를 억압하는 생체권력’임을 자인했다.

여성의 ‘야한 옷차림’이라는 게 아예 없던 시대에도 성범죄는 많았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에서 여성 신체의 많은 부분을 노출시키는 옷들은 흔히 성범죄를 야기하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미니스커트는,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강자 본위의 현대 이데올로기가 붙잡고 있는 유용한 볼모 중 하나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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