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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고무줄

등록 2015-07-06 18:53


1493년, 두번째로 대서양을 횡단하여 스스로 ‘히스파니올라’라 이름 붙인 섬(현재의 아이티)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이 매우 잘 튀기는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았다. 단단하고 물이 스며들지 않으며 탄력이 좋은 이 신기한 물질에 대한 정보는 이후 간간이 유럽에 전해졌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16세기 과학혁명 이후 인간이 신물질을 발견하고도 용도를 지정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방치해 둔 것으로는 이 물질, 즉 고무가 유일할 것이다.

고무에 연필 글씨를 지우는 성질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은 18세기 중반이었으며, 교육받은 사람이 늘어나 연필 사용이 급증한 18세기 말에는 문구업자들이 말린 생고무 덩어리를 잘라 지우개로 판매했다. 고무의 산업적 용도가 지정되고 비약적으로 확대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였다. 1839년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굿이어는 고무에 황과 열을 가하면 탄성과 내구성이 늘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1844년 특허를 받았다. 이후 고무는 자전거와 자동차 바퀴, 신발 밑창, 기계 벨트 등으로 용도를 확장했다. 1930년대 합성고무가 대량 생산된 뒤로 고무는 일상생활에서 가장 흔히 접하는 물질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고무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80년대 연필과 함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1895년께에는 인력거 바퀴 형태의 가황고무가 도입되었다. 1905년쯤 학교연합운동회 등에는 부상으로 고무공이 걸렸고, 1919년부터는 짚신 모양의 고무신을 생산하는 한국인 경영 기업들이 속출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자본이 가장 많이 진출한 분야가 고무신 제조 공업이었다. 폐타이어를 가늘게 잘라 탄성 좋은 끈으로 만든 데에서 시작된 고무줄의 용도도 무척 많았다. 고무줄은 허리띠, 머리끈, 의료용 끈, 새총 등에 사용되었으며, 그것만으로 훌륭한 놀이도구이기도 했다.

인류는 가황고무를 통해 ‘신축성’의 새 경지를 발견했다.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기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현대인의 보편적 심성은, 고무줄과 무척 닮았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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