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20 16:34
수정 : 2016.06.20 19:57
인류가 신은 하늘에 있다고 믿은 뒤부터, 어느 언어에서나 ‘높다’라는 뜻의 단어는 특권적 지위를 누렸다. ‘높은 것’은 신에게 더 가까이 있기에 신의 은총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다. 그래서 ‘높다’는 ‘신성하다’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자기 몸을 낮춤으로써 키가 비슷한 상대를 ‘신성한 존재’로 인정하는 행위는 보편적이다. 자기보다 조금 높은 상대에게는 목만 꺾고, 그보다 높은 상대에게는 허리를 꺾으며, 아주 높은 상대에게는 무릎을 꿇고 엎드린다. 심지어 동양에서는 이런 행위를 ‘인사’(人事), 즉 ‘사람의 일’이라고 한다.
물론 사람의 키는 그가 받은 ‘신의 은총’에 비례하지 않는다. 하지만 건조물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신성한 건조물은 안팎이 모두 높아야 했다. 신전들은 그 외벽도 지붕도 천장도, 인간이 사는 집보다 훨씬 높아야 했다. 위대한 신이 거처하는 건조물의 규모를 인간 신체의 척도로 계산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신전의 일부로든 별도로든 하늘을 찌를 듯한 탑을 세우는 것도 모든 종교의 공통점이다. 건조물의 실체적, 상징적 높이는 그것이 표상하고 기리는 대상의 신성성에 비례했다.
1894년 서울 사람들은 명동성당을 보고 하늘에 닿을 듯한 건물이라고 했고, 1901년 대한제국 외부는 각국 공사관에 보낸 공문에서 정동의 2~3층짜리 외국 공관들을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로 지목했다. 우리나라에서 ‘하늘에 닿은 누각’이라는 뜻의 마천루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건립 계획이 알려지면서부터였다. 하지만 1950년대까지 한국인들은 10층짜리 건물조차 볼 수 없었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하늘에 닿는 건물을 지으려는 종교적 열정을 품어왔으나, 그 꿈을 실현한 것은 자본이었다. 옛날의 바벨탑은 인류를 서로 다른 언어권으로 분열시켰으나, 현대의 마천루는 종교와 언어를 따지지 않고 모든 인간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마천루는 돈이 가장 신성한 시대, 지름신이 최고신인 시대의 표상이다.
전우용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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