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이세돌과 알파고 사이에 ‘세기의 바둑대결’이 펼쳐진 뒤, 한동안 인공지능 기계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에 대한 기사가 방송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요리사, 웨이터, 운동경기 심판, 운전기사 등이 앞순위에 꼽혔는데, 군인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장기, 체스, 바둑 등 인공지능 컴퓨터가 자기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인간에게 도전한 영역들은 모두 전쟁을 놀이화한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언제나 새로 발명한 첨단 기술과 기계를 가장 먼저 군인들에게 주었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명령에만 복종하는 기계의 미덕을 직업윤리로 삼는 것도 군인이다. 그럼에도 군인이 빠진 것은 기계가 인간을 죽이는 걸 상상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혁명 이후의 역사에서는 첨단 기계와 물건이 먼저 인간을 살상하면 인간이 그 대응방안을 찾는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 독가스가 나온 뒤 방독면이 나오는 식이었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 20세기 이후의 모든 전쟁은 신무기의 실험장이기도 했고, 그때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피해를 줄이거나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것도 과학, 특히 의학의 몫이었으나 그 성과는 언제나 무기의 파괴력에 비해 미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처음 발명되어 한국전쟁 중 집중적으로 사용된 무기 중에 네이팜탄이 있었다. 3000도의 고열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이 물건이 한반도에 투하된 양은 3만2357톤에 달했다. 파편이 몸에 닿으면 사람들은 손으로 털다가 본능적으로 눈을 가렸는데, 이 때문에 부상자들은 대개 손과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 땅에 처음 소개된 것이 성형외과술이다. 그로부터 60여년, 성형수술은 대표적인 한류 상품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성형외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요인들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출발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다. 파괴하는 기계와 물건이 앞서고 복구하는 기술이 뒤따르는 정형화한 패턴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비로소 현대보다 나은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칼럼 |
[전우용의 현대를 만든 물건들] 네이팜탄 |
역사학자 이세돌과 알파고 사이에 ‘세기의 바둑대결’이 펼쳐진 뒤, 한동안 인공지능 기계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에 대한 기사가 방송과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요리사, 웨이터, 운동경기 심판, 운전기사 등이 앞순위에 꼽혔는데, 군인이 없는 것이 신기했다. 장기, 체스, 바둑 등 인공지능 컴퓨터가 자기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인간에게 도전한 영역들은 모두 전쟁을 놀이화한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언제나 새로 발명한 첨단 기술과 기계를 가장 먼저 군인들에게 주었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명령에만 복종하는 기계의 미덕을 직업윤리로 삼는 것도 군인이다. 그럼에도 군인이 빠진 것은 기계가 인간을 죽이는 걸 상상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혁명 이후의 역사에서는 첨단 기계와 물건이 먼저 인간을 살상하면 인간이 그 대응방안을 찾는 패턴이 반복되어 왔다. 독가스가 나온 뒤 방독면이 나오는 식이었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 20세기 이후의 모든 전쟁은 신무기의 실험장이기도 했고, 그때마다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나왔다. 피해를 줄이거나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것도 과학, 특히 의학의 몫이었으나 그 성과는 언제나 무기의 파괴력에 비해 미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처음 발명되어 한국전쟁 중 집중적으로 사용된 무기 중에 네이팜탄이 있었다. 3000도의 고열로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이 물건이 한반도에 투하된 양은 3만2357톤에 달했다. 파편이 몸에 닿으면 사람들은 손으로 털다가 본능적으로 눈을 가렸는데, 이 때문에 부상자들은 대개 손과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이 땅에 처음 소개된 것이 성형외과술이다. 그로부터 60여년, 성형수술은 대표적인 한류 상품의 하나가 되었다. 물론 성형외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요인들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출발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다. 파괴하는 기계와 물건이 앞서고 복구하는 기술이 뒤따르는 정형화한 패턴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비로소 현대보다 나은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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