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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07 18:39 수정 : 2016.09.07 19:37

전우용
역사학자

“남자가 부엌에 얼쩡거리는 거 아니다.” 1960년대 이전 출생자라면 어려서 몇 번은 들어봤을 말이다. 거실과 부엌이 같은 높이로 배치되는 서양 주택과는 달리, 한옥에서 부엌은 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공간이자 여성만의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는 외부인을 끌어들일지언정 남자를 끌어들여서는 안 되었다.

한옥에서 부엌 아궁이는 온돌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부엌 바닥은 마당보다도 낮았다. 계단을 오르내려야 부엌에 드나들 수 있었으니 음식 만드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다. 쌀이나 채소를 집 밖이나 마당에 있는 우물가에서 씻어서 부엌으로 가지고 들어온 다음, 부뚜막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다듬고 썰었다. 조리가 끝나면 음식들을 그릇에 담아 상에 올려놓은 뒤 그걸 들고 부엌 밖으로 나왔고, 식사가 끝나면 그릇들을 바구니에 담아 다시 우물가로 가져가 씻어서는 또 부엌 찬장에 쟁였다. 부엌은 목욕탕으로도 쓰였는데, 그럴 때에는 큰 물통을 들고 여러 차례 왕복했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의 동작들로 인해, 여성의 무릎과 허리는 일찍 망가졌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해야만 하는 부엌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온돌 난방 시스템을 중핵으로 하는 주택 구조 전체를 바꿔야 했다. 싱크대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 해는 1962년이지만, 부엌 내부만을 입식(立式)으로 바꾸는 것은 가격 대비 효과가 미미했다. 싱크대 시장이 부쩍 넓어진 것은 아파트 건설이 본격화한 이후였는데, 1969년에도 싱크대 생산량은 전국적으로 1만대 미만에 불과했다.

아파트 및 그와 유사한 내부 구조를 가진 주택이 표준적 거주공간이 되면서, 거실과 부엌 사이의 경계는 사실상 사라졌다. 더불어 부엌에 얼쩡거리지 않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남자도 사라졌다. 싱크대는 남자들이 자기 앞에 서는 것을 당연한 일로 만들었고, 오늘날 숱한 남자 요리사들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훈계보다 사람을 더 확실히 바꾸는 건, 물건과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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