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다른 동물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거나 부족한 건, 인간에게는 축복이었다. 죽어가는 동물의 고통이 느껴졌다면, 인간은 고기도 먹지 못했을 것이고 모피 옷도 입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라고 해서 사람과 동물 사이의 거리보다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원형극장 특별석에 비스듬히 누운 채 음식을 먹어가며 검투사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만약 생명체의 감각을 측정하여 수치로 표시해주는 기구가 있었다면, 인간이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는 지금보다 훨씬 확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과학혁명 이래 인류는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데 열중해왔지만, 감각의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다른 요인으로 인한 것들과 직접 비교하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방도를 찾지 못했다. ‘뼈를 깎는 듯한 아픔’, ‘생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 등. 다만 아주 작은 영역, 기온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수치화할 수 있다. 오늘날 ‘살을 에는 추위’, ‘찌는 듯한 더위’라는 감각은 수치로 표시되는 기준과 연계된다. 사물, 생체, 대기 등 모든 것의 온도를 측정하여 표시하는 기구, 즉 온도계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조수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더 정밀하고 간편한 온도계 발명에 뛰어들었는데, 그들 중 큰 성공을 거둔 이는 1714년 화씨 온도계를 발명한 독일 물리학자 파렌하이트와 1742년 섭씨 온도계를 발명한 스웨덴 천문학자 셀시우스였다. 현대적 체온계는 1867년 영국의 올벗이 발명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온도계는 1880년대에 서양인 의사들이 가져온 체온계로 추정되며, 1905년께부터는 대기의 온도를 측정해 표시하는 한난침(寒煖針)도 도입되었다. 오늘날 온도계는 독립적으로든, 냉난방기에 부착된 상태로든, 단지 수치 정보만으로든 사람의 일상생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분노와 모욕감을 수치로 표시하는 기구가 있다면, 대통령이 공감하는 범위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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