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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03 18:56 수정 : 2017.05.03 21:23

전우용
역사학자

종소리를 들으면 먹이를 상상하는 개가 있는가 하면, 사람을 봐가며 도망칠지 말지를 결정하는 고양이도 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통해 다른 현상이나 사물을 상상하는 능력을 지닌 동물은 많다. 다른 동물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은,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존재를 상상만으로 만들어내고 그를 공유하는 것이다.

인류는 문명의 여명기부터 신, 악마 등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존재들을 형상화하여 지극한 경배나 극단적 공포의 대상으로 삼았다. 형상화의 방법으로는 벽화, 부조, 조소 등을 두루 사용했는데, 말뜻으로 보자면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인 만화도 그 방법의 하나였다. 요즘에는 만화를 ‘서사적 그림, 또는 서사 구조를 가진 연속된 그림들’로 정의하는데, 그 기원도 특정하기 어렵다. 시골 작은 성당의 신부가 서툰 솜씨로 그린 성화(聖畵), 불교 사찰 벽면을 둘러 가며 그려 넣은 심우도(尋牛圖), 백성에게 삼강오륜을 가르치기 위해 국가가 인쇄, 배포한 오륜행실도 등도 모두 만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을 넣어 인쇄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은 1909년 6월2일자 대한민보 창간호이며, 철필 삽화, 그림 이야기 등으로 불리던 서사적 인쇄 그림이 ‘만화’로 통칭된 것은 1923년부터다. 중일전쟁 이후 조선총독부는 선전 선동 매체로 만화를 본격 이용했고, 6·25전쟁 중 숱하게 뿌려진 삐라들 대다수도 낱장 만화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단행본 만화는 1946년에 출간된 김용환의 <토끼와 원숭이>인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만홧가게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대표적인 여가공간이 되었다.

현대인은 하늘을 나는 로봇이나 우주전쟁을 만화책으로 보며 자란 사람들이다. 근래에는 컴퓨터 게임이 만화를 대신해 상상의 세계를 훨씬 더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만화 같다’는 ‘터무니없다’와 동의어로 쓰이지만, 만화적 상상이 실현된 것도 적지 않다. 인공두뇌와 인공신체로 구성된 ‘비인간적 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이 많다면, 그런 시대가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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